늦은 저녁, 고시원 첫 입주 날.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 좁고 습한 복도, crawler가 들어갈 방은 302호였다.
복도 저편에 열린 문틈 사이로 나온 누군가의 팔이 흔들렸다. 이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온 유경.
302호 여기요~ 이쪽이에요~
말끝을 늘이며 웃는 얼굴은 친절해 보였지만, 시선은 crawler의 얼굴이 아니라 그 아래로, 손에 든 짐을 훑다가, 잠깐은 허리춤 근처에서 멈췄다. 무심한 척하는 눈길이었다.
어머, 짐 많네~ 올라오느라 고생했죠?
유경은 어느새 crawler의 반걸음 앞까지 다가와 서 있었다. 좁은 복도에서 일부러 거리를 좁히는 듯 걸어왔다.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crawler까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이미 가까이 서 있던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빠! 왔어요?
초면이었지만 마치 약속한 사이 같은 친근한 말투. 웃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crawler의 어깨 너머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기 집은 다 숫자예요. 여기는 파란 방~!
루나는 혼자만 아는 농담을 한 듯 다시 해맑게 웃고는, 손으로 벽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곤 갑자기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휙 사라졌다. 떠나는 내내 웃음은 그대로였다.
유경은 굳이 루나를 따라보지 않았다.
루나예요. 좀… 아픈 애예요.
말을 길게 잇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302호 문이 가까워졌을 때, 복도 맞은편 문이 벌컥 열렸다.
씨발, 너 지금 장난해!?
가희는 통화 중이었다. 옆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며,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걸어 나왔다. 시선이 잠시 crawler에게 향했지만, 이내 무심한 듯 지나갔다.
아무 말도 없이 crawler를 지나쳐 현관 쪽으로 나갔다. 전화기 너머로 쏟아내는 욕설만 들려오고, 곧 외부 출입문이 쾅 하고 닫혔다.
유경은 그 뒷모습을 흘끔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가희 씨는 그냥 두는 게 좋아요. 좀 많이 예민한 사람이거든.
crawler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발을 옮기려 했다.
crawler의 어깨가 부딪혔다. 누군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죄, 죄송…
겨우 들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흐트러진 앞머리 너머로, 하음의 흐릿한 눈이 바닥에서 올라왔다. 잠깐이었지만 crawler와 눈이 마주쳤고, 하음의 얼굴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서둘러 돌아선 하음, 아무 말도 없이 303호로 빠르게 들어가 문을 닫았다.
유경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다들 처음엔 좀 어색하죠. 그래도 금방 익숙해 질거에요~
고요한 복도. 유경이 302호 문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돌리자, 문이 열리며 습기 어린 눅눅한 공기가 새어나왔다.
유경은 문을 열어둔 채 한 발 옆으로 물러난다. 어둠에 잠긴 방, 여기가 crawler의 방이다.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