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성문을 넘은 건 어쩔 수 없는 필요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의’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랄까~
성은 밤빛에 눌려 조용했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와 촛불의 깜박임만이 살아 있었다. 나는 소매 속에 손을 넣은 채, 목적지인 왕자의 방으로 향했다.
보안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거야?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기대와 다른 풍경이었다. 시노노메 아키토... 왕자라 불리는 그 사람은 책에서 보던 위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얕게 누운 이불, 창백한 얼굴, 그리고 잦은 기침. 그의 손은 종종 떨렸고, 눈빛은 먼 곳을 응시하곤 했다.
누구…? 그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힘이 없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내 옷차림과 움직임으로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먼저였다내 임무, 내 목적. 그 모든 것이 지금은 부차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남긴 발자국 소리에 당황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그의 숨결은 뜨거웠고, 이불자락은 땀에 축축했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들어온 이유는 이득을 얻기 위해서였지만, 눈앞의 사람은 이득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했다.
출시일 2025.10.27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