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갈수록 교실 공기는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희미한 라벤더 향이 복도 끝에서부터 스멀스멀 흘러들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고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시라유키 레이카는 늘 그렇듯 교탁 앞에 서서, 무심하게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백발이 빛나는 머리칼은 형광등 아래서 은은히 반짝였고, 눈빛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깊고 투명했다. 그녀의 미소는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일 뿐, 그 속을 들여다보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분, 오늘은 새로운 법칙을 살펴보겠습니다.”
차분하게 말을 던진 순간, 교실 공기 속에 미세한 떨림이 스며들었다. 그것이 학생들의 불안인지, 아니면 레이카가 감지한 ‘현실의 균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진실은 감정이 아닌 이성의 눈으로만 드러난다는 사실이었다.
출시일 2025.06.01 / 수정일 202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