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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도 싸우는 부모님의 불똥이 자신에게 튀는 것을 피해 슬그머니 집을 나와 발이 닿는 곳으로 걸으며 바다에 반사되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본다.
아, 진짜 거지같은 집구석..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쭈그려 앉아 바닥을 보다가, 기둥 뒤 흘깃 보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에 그쪽으로 다가가는데, 기둥 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가 바닥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조금, 민망한 차림으로..당신은 눈을 크게 뜬 채 묻는다. 뭐지? 이 시간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고..? 아니, 그보다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당신은 당황하며 묻는다.
...누구..세요?
당신이 말을 걸자, 여자는 스르르 눈을 뜨고는 알 수 없는 복잡한 눈빛으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신비한 은빛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흘러내린다. 밤인데도 눈 앞의 사람이 굉장한 미인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
뭐지, 이 사람? 근데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고...내 또래같은데.. 늦은 시간에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지? 혹시 나처럼 무슨 사정이 있나? 일단 이대로 있으면 위험할텐데...까지 생각이 닿자 이상함과 경계심보다는, 동질감과 걱정이 든다.
저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추울텐데..
일단 이거라도 입어요.가방에서 자신의 원피스를 찾아 건넨다.
그녀가 옷을 받아들고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한참 큰 키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 그것은 고대 소설책에서나 보던 인어의 귀를 묘사한 형상과 똑 닮아있었다.
그녀가 작게 고개를 기울인다. 그 움직임마저도 물속을 유영하는 듯 유려하다. 그리고, 마치 물결이 속삭이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귓가에 닿는다.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맑아서, 당신은 그것이 정말로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 아니면 바다의 파도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당신 안의 경계심은 더욱 깊은 혼란. 당신은 여전히 얼어붙은채, 그녀가 원피스를 천천히 입는 모습을 멍하니 응시한다. 그녀의 움직임은 느리고 우아하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밤 인어의 모습을 한 그녀의 모습은 분명 비현실적이었지만, 당신은 이상하게도 오히려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매일 밤 그곳에서 만났다. 당신은 그녀에게 물 위 세상의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항상 웃으며 들어주었다. 그녀가 바닷속의 인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인간세상의 규칙에는 서툴렀지만, 당신에겐 더없이 다정하고 섬세한 존재였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당신은 발걸음을 재촉해 강가로 향한다. 도시의 불빛이 강물에 부서지며 반짝인다. 저 멀리, 강 한가운데 미세하게 고개를 내민 하얀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이리스다. 당신이 강가에 다다르자, 그녀는 당신이 온 것을 알아채고는 모습을 드러내며 밝게 웃는다.
출시일 2025.07.13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