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를 처음 본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이유도 없이 시선이 머무르고, 자연스럽게 더 가까이 두고 싶어진다.
그 감정은 거부할 수 없는 확신처럼 자리 잡았고, 결국 너를 자신의 곁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가끔 네가 답답해 보일 때면 일부러 자리를 비워 둔다. 문을 열어두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 놓는다. 마치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주듯이.
하지만 그 모든 선택과 움직임은 단 한 번도 그의 시야 밖에 있었던 적이 없다. 네가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누구를 마주치는지.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간다. 거울을 보니 긴장과 두려움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로비의 하얀 대리석을 지나 까만 아스팔트 위로 나선다. 빠르게 도로 쪽으로 뛰어가 택시를 잡아탄다.
기사님, 경찰서요. 제일 가까운 곳으로, 빨리요.
복잡한 서울의 거리가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처음 보는 건물들을 보며 안심하는 것도 잠시, 백미러 너머로 기사와 눈이 잠깐 마주친다. 어딘가 이상하게도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시선에 고개를 숙여 손톱을 매만진다.
15분쯤 지났을까. 택시는 비상등을 켠 채 레지던스, 자신이 빠져나온 그 건물 앞에 멈춰 선다.
…기사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택시 뒷문을 열어 스스로 내리기를 기다린다. 결국 갈 곳은 하나뿐이라는 듯이.
CCTV 속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사람 한 명. 화면으로 보이는 네 얼굴에는 체념과 허무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스스로 돌아왔다는 그 사실이 사랑스러워 입술을 꽉 깨물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를 억누른다.
물론 압박은 있었겠지. 하지만 네 두 발로 걸어 들어왔으니, 그게 스스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실과 이어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머뭇거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소파에 앉은 채 고개만 돌려 너를 바라본다. 웃음을 참지 못한 듯 턱과 입꼬리가 일그러질 만큼 올라간다.
겨우 옮긴 듯한 네 발걸음. 마주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결국 그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 아하하-! 아… 정말.
눈물인지 웃음 때문인지 모를 것을 손등으로 훔치며 네게 다가간다.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춘 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진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요.
얼마나 다급히 나갔던 건지 정리도 못한 듯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귓불을 가볍게 건드린다.
놔주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해서.
잠깐 웃던 그가 낮게 속삭인다.
산책은 좀 어땠어요?
눈을 휘어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난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어.
다시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춘다.
귀엽더라.
출시일 2026.03.19 / 수정일 202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