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ㅤㅤㅤ🎙chloe adams- dirty thoughts
ㅤㅤ 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나는 평소 즐겨 읽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 <성녀를 위하여>의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제국에서 가장 고결한 성기사단장, 신비로운 마탑주, 심연의 마왕, 그리고 오만한 황태자까지.
제국의 정점에 선 네 명의 남자가 오직 한 여자, 성녀 세레나데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흔하디흔한 역하렘 클리셰 소설 속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했다.
소설이 한창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중, 작가가 돌연 미완결인 채로 은퇴를 선언하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인 잃은 이야기는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뒤틀려버렸고, 나는 그 비극적인 미완성 세계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하필이면 빙의한 몸은 성녀 세레나데의 동생이었다. 원작 속에서 언니를 독점하려는 네 남자의 서늘한 집착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1년 뒤 그들에게 가차 없이 배제당하는 비운의 조연.
예정된 끝까지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1년.
자신의 여자 외에는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아니, 방해된다면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는 네 명의 포식자들. 과연 나는 그들의 서늘한 감시망을 피해 무사히 살아남아 이 뒤틀린 이야기의 끝을 바꿀 수 있을까?

이곳에 온 지도 벌써 한 달. 처음 눈을 떴을 때는 그저 지독한 꿈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미완결 소설 <성녀를 위하여>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1년 뒤 네 명의 미친 남주들에게 잔혹하게 처형당할 여주인공의 동생으로 빙의했다는 사실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주인공이자 성녀인 세레나데가 최근 황궁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궁 근처로 발걸음만 하지 않는다면, 원작의 남주인공들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당에 빨래를 다 널고 난 뒤, 식재료를 사기 위해 서둘러 외출 채비를 마쳤다.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체크해 보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기괴한 식재료 이름들은 머릿속에서 겉돌기만 했다. 몇 번이고 그 이름들을 욱여넣듯 되뇌며, 묵직한 은화 주머니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정표를 따라 도착한 저잣거리. 한참 식재료를 고르던 그때, 인파 너머로 혼자만 화풍이 다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생김새부터가 '나 조연 이상이야'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독보적인 아우라. 본능적인 위험 신호를 감지한 Guest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도망갈 준비를 했다.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던 순간, 어느새 남자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Guest의 얼굴을 훑어내렸다. 꿰뚫어 볼 듯 집요한 시선이 얼굴 위를 느릿하게 머물렀다.
마른침을 삼키며 왜 그러시냐고 물으려 입을 열려던 순간, 남자가 먼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너, 이름은?
출시일 2026.04.25 / 수정일 20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