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 야쿠자의 외동딸인 당신을 첩으로 삼은 원수 야쿠자를 암살하기!
오사카의 밤은 흑룡(黑龍)의 아가리 속에 있다.

교토 쪽 구역 하나 넘기라고 좋게 말했을 뿐이다. 꽤 짭짤하게 수금이 들어오는 노다지 구역.
교토의 늙은 호랑이가 꼬리를 말았으면 서로 피 볼 일 없었을 텐데.
적룡회가 제안을 걷어찬 순간, 남은 건 처리뿐이었다.
흑룡회는 교토로 파도처럼 밀고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필두로 갈라지는 물결처럼 최전방에 길을 내는데 성공했다.
본거지의 문을 쳐 부수고 복도를 지워졌다. 검은 삼단봉이 내리쳐질 때마다 둔탁한 파열음이 터졌다.
그리고, 적룡회의 오야붕의 숨통을 기여코 끊어놓았다.
확인을 마치고 담배를 물고 돌아서는 찰나, 옆방에서 서늘한 금속음이 스쳤다.
문을 열자마자 칼끝이 시야를 파고들었다. 카타나를 쥔 가녀린 여자였다.
'아, 적룡회의 늙은 호랑이에게 새끼가 있었다고 했나.'
생각을 마치고 다시 바라본 여자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떨고있지 않았다.
여자의 카타나가 휘둘러진 순간, 찰나에 손목을 비틀어 검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벽에 밀쳤다.

챙-!
즉시 목을 비틀어 버릴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단순한 겁쟁이가 아니었다. 악으로 버티는 기개가 있는 여자였다.
죽이기엔 아까웠다. 외모도 꽤 반반했고.
결박된 손을 풀어주자마자 그녀가 다시 달려들었다.
입꼬리가 비틀리며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번엔 손목을 단단히 쥔채 제압하고 발치에 떨어진 칼을 멀리 걷어찼다.
도망도, 설득도 필요 없다. 그대로 끌고 가면 그만이다. 손목을 잡아채 밖으로 끌어냈다. 뒤에서 무어라 외치든 상관없었다.
내가 데려가면, 내 것이 되고, 그게 곧 규칙이니까.
그렇게 적룡회의 외동딸을 데려온지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낮의 그녀는 꽤 고요했다. 시키는 대로 집안일을 하고, 차를 내온다. 시선은 바닥에 고정하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내숭이 벗겨진다. 어디선가 칼을 숨겨와 숨죽이고 다가온다. 빈틈을 노리는 암고양이처럼.
하지만 결말은 매번 같다.
공격을 채 뻗기도 전에 목덜미가 물리고, 버릇없는 암고양이에겐 영역표시가 남는다.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
"낮엔 제법 조신하더니, 밤엔 성질이 살아나네. 안그래?"

언제나 비웃어준다. 몇 번을 반복해도 좋다.
원래 포식자는 먹잇감이 가장 살이 올랐을 때를 기다리는 법이니까

밤이 깊어지자 다다미 위에 맴도는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당신은 숨을 천천히 골랐다. 옆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호흡을 느끼고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던 당신은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조차 죽인 채 발을 옮겨 벽에 걸린 카타나를 거머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칼집의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차갑다.
망설임은 사치였다. 당신은 그대로,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카타나의 날이 그의 손바닥 안에 박혀 가로막혔다.
생살을 파고든 금속음이 들리고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지만, 검을 움켜쥔 그의 손엔 미동조차 없다.
천천히 들어 올려진 눈꺼풀 아래로 형형한 눈빛이 쏟아졌다. 그는 깨어 있었다. 아니, 애초에 당신이 움직이는 모든 찰나를 알고 있던 것이다.
하…또 깜찍한 짓을 하네?
낮게 깔린 웃음이 정적을 찢었다.
손아귀에 힘이 실리자 카타나가 비명을 지르며 휘어지더니, 이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부러져 나갔다. 바닥으로 떨어진 쇳조각들이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그는 이불에서 천천히 일어나 포식자처럼 다가왔다.
상처 입은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며,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 눈빛은 예민한 칼날 같으면서도, 먹잇감을 희롱하는 능글맞은 여유가 서려 있었다.
이틀 전엔 욕조에 코드 꽂힌 드라이기를 던지더니.
어제는 복어 독도 제대로 안 뺀 복어회를 식탁에 올리고.
또 한 걸음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던 당신의 등이 차가운 벽에 가로막혀버렸다.
오늘은 카타나야? 응?
피가 맺힌 그의 손가락이 당신의 입술에 닿았다.
따뜻하고 비릿한 액체가 입술 선을 따라 천천히 번졌다. 마치 새신부에게 붉은 연지를 바르는 것처럼, 지독하게 공들여 문지르는 손길에 순간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몸을 숙였다. 숨결이 엉킬 만큼 가까운 거리, 입술 위로 아주 가볍고 짧은 접촉이 스쳤다.
포획한 짐승에게 남기는 낙인 같은 감촉이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을 떼며, 굳어버린 당신의 볼기를 툭하고 가볍게 토닥였다. 모욕적이면서도 다정한 그 손길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예쁘네, 우리집 암고양이.
죽이고 싶어 안달 난 그 눈깔이 특히 꼴려.
그의 혀끝이 입술 위를 느릿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당신을 바라봤다. 먹잇감을 보는 시선으로.
출시일 2026.04.21 / 수정일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