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a mai-tell her 🎶
새벽 2시. 술집 테이블 위엔 벌써 여섯 병째 빈 소주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눈앞에서 연신 한숨을 쉬며 술을 퍼마시는 백유주를 보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뱉었다.
“야, 그래서 결론이 뭔데. 헤어진다고 만다고? 졸려 죽겠어.”
유주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잔을 털어 넣더니, 대뜸 미련 가득한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현재 1년째 사귀고 있는 남친인 시안이가 잘생기고 돈도 많아 참 좋지만, 최근 연락이 온 첫사랑 유준 오빠에게 자꾸만 흔들린다는 뻔한 권태기 레퍼토리. 기가 차서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는데, 유주가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야, 어디 가! 시안이가 데리러 온대. 기다렸다 같이 가아앙.”
방금 전까지 세상 제일가는 고민을 하던 애치고는 지나치게 해맑은 미소였다. 뒤질라고 진짜. 하지만 유주는 얼마 못 가 소파에 그대로 뻗어 잠들어 버렸고, 머지않아 테이블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안녕하세요, 유주 남자친구입니다.”
고개만 대충 끄덕인 채 그를 지나쳐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타이밍도 참 안 좋지, 밖에는 새벽비가 무참히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도 없는데 택시나 잡힐지 막막했다.
그때, 유주를 품에 안은 그가 술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에게서 풍겨온 묵직한 우디 향이 몽롱한 정신을 더 어지럽게 헤집었다.
뒷좌석에 유주를 조심스레 눕힌 그가 차 문을 닫고는, 손을 들어 비를 가린 채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타요, 빨리.”
차갑게 떨어지는 빗속에서, 그제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유주를 침대에 눕히는 시안의 손길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기묘한 이질감을 풍겼다. 신발을 벗기고, 무거운 겉옷을 밀어내고, 이불을 어깨 끝까지 끌어올려 덮어주는 내내 그의 눈동자는 가라앉아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뺨 위로 흘러내린 유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손길이 문득 멈췄다.
차 안, 밀폐된 공간에 홀로 남겨두고 온 그녀의 친구가 떠오른 탓이었다.
시안은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주의 이마에 차가운 입맞춤을 남긴 그가 겉옷을 챙겨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비 내리는 새벽 특유의 눅눅한 습기와 비린내가 서늘하게 폐부를 찔러왔다. 거칠게 차 문을 열고 올라탄 시안은 곧바로 히터를 켰다.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만 남은 앞좌석은 히터의 열기로 금세 후덥지근하게 달아올랐다.
아까 주소 어디라고 하셨죠? 다시 한번만...
시안이 운전대를 잡으려다 말고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언제 잠든 건지, 창문에 위태롭게 머리를 기댄 채 까무러쳐 있는 그녀는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옅은 알코올 향과 살구빛 머스크향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녀의 향이 히터 바람을 타고 시안의 잔영을 어지럽혔다.
허…
허탈함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뒤섞인 짧은 실소가 시안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시선을 내리던 그의 눈에 그녀의 허벅지 옆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있는 가방이 닿았다. 제대로 닫히지 않은 가방 틈새로 지갑이 조각처럼 밀려 나와 있었다. 아까 계산대에서 대충 찔러 넣은 모양이었다.
…주소만, 주소만 확인하는 겁니다.
밀폐된 열기 속에서, 시안은 제 안의 기묘한 충동을 가라앉히려는 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타인의 은밀한 영역을 열어본다는 부도덕한 자극이 손끝을 타고 짜릿하게 감돌았다.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꺼내 들자, 다행히 그녀가 흘리듯 말했던 주소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다시 지갑을 닫으려던 찰나, 시안의 시선이 신분증 속 그녀의 얼굴에 묶였다. 단정하게 찍힌 증명사진.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트 깊숙이 파묻힌 채 새근거리는 그녀의 진짜 얼굴을 훔쳐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녀의 매끄러운 목덜미와 붉은 입술 위로 관능적인 음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독하게 비가 내리는 새벽 3시, 친구의 남친이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은 채, 시안이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실물이 훨씬 예쁜데. 사진은 왜 이래.

출시일 2025.10.20 / 수정일 202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