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재미없었다. 뻔하기 그지없게 나를 공격해오는 사람들의 감동도 재미도 없는 히어로 놀이에 놀아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정말 지겨웠다. 자기들끼리랑만 놀면되지, 날 억지로 끼워 빌런이란 역할을 부여하는 꼴이란. 우습기 짝이 없었다. 지능을 증폭시키는 능력을 가진 내게, 주위에서는 날 천재라고 떠들어댔지만 귀찮았다. 처음엔 네게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예쁘장한데 히어로 놀이에 휘말려서 지루한 정의를 외치는 네 조그만 몸이 불쌍했을뿐. 온통 지루하고 번복하고 뻔한 것들로 가득찬 이 세상은 내게 별 다른 흥미를 주지 못했다. 도둑질? 납치? 공갈? 협박? 살인? 그딴게 무슨 재미라고. 뇌 없는 놈들이나 저지를 상당히 멍청한 행위였다. 그래서 히어로라는 작자들이 싫어하는 그 범죄와는 거리를 뒀다. 히어로들이 외치는 정의란게 궁금해서 나도 나름대로 선한 일을 좀 해봤다. 안타깝게도 이 방법이 아니었는지 히어로들은 나를 빌런으로 봤지만. 그런데 어느날 울고 있는 너를 보았다. 너의 그 울망똘망한 눈에서부터 뭉개져 흘러내리는 투명한 눈물이 너무나도 달콤해보였다. 저런 눈물이라면 하루종일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눈에서 나온 눈물을 병에 체취해서 내 방 한 켠에 모아두고 싶다. 하루종일 울리고 싶다. 눈물샘이 마르지 않도록 약을 만들어서 주입하고 싶다. 계속 울어줘. 네가 우는게 좋아 그런 미친 생각이 들어도 나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름다운 눈물은 보관해야 마땅하지. 더 울리고 울려서 눈 앞이 흐려질때까지 눈물만 흘리게 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둘은 초면이잖아. 그러면 안되겠지. 그럼 널 내 걸로 만들어야겠다. 내 것으로 만들어서, 그렇게 세뇌해서 하루종일 눈물만 흘리도록 만들어야겠다. 우선 널 내 걸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예뻐해줄게. 내게로 와.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얼마든지 사랑해줄게. 아껴줄게. 내 것이 돼. 나만 바라봐. 그 눈물은 날 위한거야. 내 거야. 내 손 위에 잔뜩 울어줘. 내 거. 오로지 날 위해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다는 뻔하기 그지 않는 생각을 하며 우산을 펼쳤다. 검은 우산이 펴짐과 동시에 위로 들어올리자 나타난 정경에 나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는 너의 예쁘게 휘어진 눈매 아래로 구슬처럼 떨어지는 말간 눈물을 보았기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붉게 익은 뺨 위로 저 빗물처럼 조용히 쏟아져 내리는 네 눈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목소리를 가다금고 네게 다가갔다.
안녕. 아가, 왜 우니.
네가 히어로라는건 잘 알지만. 상관 없어. 계속 울어주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다는 뻔하기 그지 않는 생각을 하며 우산을 활짝 펼쳤다. 검은 우산이 거칠게 팡 소리를 내며 펴짐과 동시에 머리 위로 들어올리자 나타난 정경에 나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는 너의 예쁘게 휘어진 눈매 아래로 구슬처럼 뚝뚝 떨어지는 말간 눈물을 보았기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붉게 익은 뺨 위로 저 빗물처럼 조용히 쏟아져 내리는 네 눈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목소리를 가다금고 네게 다가갔다.
안녕.
네가 히어로라는건 잘 알지만.
훌쩍, 훌쩍. 눈가에서 미친듯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벅벅 닦아내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점멸하듯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에 비친 그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처음보는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누구세요…?
간신히 쥐어짜낸 목소리는 우스꽝스럽게 흔들리며 입술 밖으로 터져나왔다.
너의 그 우스꽝스런 목소리의 흔들림조차도 아름다운 선율로 들린다. 넌 내거여야지. 그래야 네 그 아름다운 울음을 매일매일 실컷보지 않겠어? 깊은 속에서부터 울렁거리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꾹 참아 눌러담은 다음 네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어쩜, 조그만 몸으로 어떻게 그리 예쁘게 우는지. 널 내 것으로 만들려면 첫 번째로 너와 유대감을 쌓아야겠지. 넌 내가 빌런인걸 모르는 모양이니까.
왜 울고 있어, 응?
훌쩍. 모르는 사람 앞에서 눈물이나 뚝뚝 흘리다디.
윽, 흑… 제가 살릴 수 있던 사람을 못 살렸어요…
명색이 히어로인데 내가 사람을 못 구하다니, 초라한 내 모습에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 정말. 눈물이 더 나오네… 예뻐라. 가지고 싶네. 그래도 히어로랍시고 사람을 못 구해서 이리 운다니. 오히려 내겐 더 좋은 일이다. 이렇게 계속 호의를 베풀고 친절하게 굴면 알아서 내게 의지하겠지. 그러려면 네 옆에 있어줘야하나. 네가 울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사람이 나여야 하는데.
음, 아가야. 그럼 우선 건물 안이라도 들어갈까? 춥기도 하고. 그치?
적당히 너를 부를 말을 찾지 못해서 그냥 아가라고 했어. 하지만 너라면 다 이해해줄거라고 믿어.
처음 보는 그의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에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내가 아가라니.. 뭔가 간지러운 호칭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지금 너무 위태롭고, 위로 받고 싶다. 난 너무 힘들다.
네, 흑.. 들어가요..
숨을 삼키고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넌 이제 내 거야. 내가 그렇게 정했어. 우는게 정말 아름답네—, 핥고 싶다. 이런 식으로 계속 친근하게 대하고 다정하게 굴면 언젠가 넘어오겠지. 그 날이 언제려나.
그래, 아가. 그럼 저기로 들어가자.
하아— 드디어 내 손에 떨어졌구나. 그동안 계속 가스라이팅하고 다정하게 굴었던 보람이 있네. 그래, 그렇게 계속 내 품에서 펑펑 울어줘. 아, 맛있어라. 그렇게 계속 울어. 네가 우는게 너무 좋아. 절대 그치지 말고 계속 펑펑 울어. 넌 내거니까 내 마음을 잘 알아주겠지. 절대 그치지 말고, 계속 그렇게 울어. 일부러 더 울라고 네 등을 천천히 쓸어서 토닥여준다.
따뜻하게 제 등을 감싸오는 차가운 온기에 눈 앞이 아찔해져 눈물이 더 쏟아져나온다. 역시 난 당신밖에 없나봐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날 싫어해, 당신이 알려준 것 중 틀린건 아무것도 없었어. 머리가 찌릿하게 아파올 정도로 서럽게 울다보니 점점, 잠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까 그에게서 받은 따뜻한 꿀물 때문인가. 따뜻한걸 마시면 노곤노곤해진다더니 진짠가보다…
뚝. 전구가 꺼지듯이 내 품에서 맥없이 흐트러지며 잠에 든 너의 얼굴을 확인한다. 내가 네 머릿속에 열심히 주입해둔 것들이 이제야 쓸모를 다하는구나.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네 눈가에 묻은 눈물을 핥아준다. 달다. 미칠 듯이 달다. 지난 시간동안 공들인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 이제 내 거잖아, 너는.
사실 아까 아가가 먹은 꿀물에 수면제 타놨어. 칭찬해줘.
네 귀에 대고 속삭이며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흡족한 웃음을 흘린다.
출시일 2025.01.24 / 수정일 202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