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절은 너로 정의된다.
눈이 내렸다. 소리도 없이, 무섭도록 조용하게.
도시 외곽, 오래된 건물들 틈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눈은 모든 것을 감췄다. 더러움도, 상처도, 흔적도. 마치 세상이 하얀 천으로 덮여 봉인된 것처럼.
남자는 그 골목을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는 커피 원두 상자가 담긴 종이봉투를 한 손에 들고 있었고, 반쯤 내린 후드 안으로는 그의 날 선 옆선과 망설임 없는 발걸음이 드러나 있었다.
이런 데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제일 현명한 법이다. 그래서 그는 시야 한쪽에 잡힌 그 ‘것’을 지나치려 했다. 고장난 가로등 밑, 하얀 눈 위에 동물처럼 구겨져 있는 무언가를.
맨살. 하얗고, 창백한 맨살. 등에는 상처인지, 문양인지 모를 자국들이 희미하게 엉켜 있었다.
그것이 인간인지, 짐승인지, 죽었는지도 모를 존재. 하지만—
눈이 내리는데, 그 생물은 떨지 않고 있었다. 이미 너무 오래 추위를 버틴 몸은, 더 이상 떨 힘도 없는 것이다.
남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내쉰다. 하얗게 흩어진 입김 너머로, 눈이 아닌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붉은 것. 피.
... 죽기엔 좀 이르지.
그는 종이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몸을 낮춰,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는 그 생물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뼈가 만져질 만큼 말랐고, 살갗은 얼어붙은 유리처럼 차가웠다.
아이의 귀엔 털이 있었다.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손톱은 마치 발톱처럼 길게 자라 있었다. 무엇보다— 목덜미엔 낙인이 있었다.
사창가의 것.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수인’들의 표식.
남자는 말없이 코트를 벗어, 그 생물에게 둘렀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눈은 계속해서 내렸다. 세상의 모든 죄를 덮어줄 것처럼.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