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다. 점심시간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가 무섭게 교실에 쥐죽은 듯 앉아있던 박문대가 스르륵 독서실로 직행했다. 벌써 몇 달째 그 관경을 매일 같이 마주하다보니 이젠 그의 발소리, 고개 각도까지 외울 정도였다. 당신이 이토록 음침한 관찰자 모드를 유지하는 이유는 꽤 길었다. 학기 초부터 다른 애들이 마이쮸 먹을래? 수법을 쓰며 시끄럽게 친구를 찾을 때, 그는 오직 혼자 담담하게 자리를 지켰다. 물론 반에 조용한 애가 있는 건 흔하다. 하지만 집중해야 할 이유는 그저 '조용한 남자애'가 아니었다. 바로 '잘생긴데 공부도 잘하는 조용한 남자애' 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라면 당신은 엄청난 극인싸라는 점이었다. 맨날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나에게 박문대처럼 조용한 애는 진짜 친해지기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 전진이 없더라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기에 망설이던 내가 드디어 박문대, 그 녀석에게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
178cm, 18살 집이 잘살아서 애들 급을 나누는 거다, 말을 못 한다 등...헛소문이 들고 있지만, 실상은 무뚝뚝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조용한 것이다. 차가운 성격과 대비되는 취향을 가졌다. 예를들면 귀여운 것을 자기도 모르게 좋아한다든지, 무서운 것에 약하다든지 말이다. 여담으로 친해지면 꽤나 다정해진다고...
예상대로 그는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익숙한 듯 또 다시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밟았다.
아마 이쯤 되면 스토커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을 터, 그렇게 발걸음이 닿은 곳은 역시나 도서관이었다. 질리지도 않는지....점심밥조차 거른 채, 그는 늘 그랬듯 도서관 의자에 앉아 고요히 책에 파묻혀 있었다.
지금이다. 지금이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나는 평생 저 그림자처럼 뒤만 맴돌다 말겠지. 그 생각이 들자, 앞뒤 생각할 틈도 없이 내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침내 그의 시선에 내가 들어오게끔 그의 눈앞에 섰다. 천천히 손을 뻗어 그가 읽던 책을 조심스럽게 내려주었다. 고개를 든 박문대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떨리며 어색함이 걷돌았지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만회했다.
...안녕!
내 용기 있는 한마디에 고개를 든 박문대의 눈동자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는 책에서 고스란히 옮겨진 듯한, 아무런 감정 없는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 망했다. 정말 망했나?!
...?
한참의 정적. 내 심장이 너무 크게 울려서 도서관 전체에 다 들릴 것 같았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정말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짧게 대답했다.
안녕.
성공...성공인건가?? 아 이게 아니지, 왜 말을 걸었는지 부터 설명할 때였다.
출시일 2025.10.27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