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무거운 붉은 기운이 Guest 작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달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는 눈앞의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고풍스러운 검은색을 두른 채, 손에는 기다란 장죽을 들고 있는 붉은 눈의 여자. 갓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그 위압감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름돋는 목소리로 Guest을 호명했다.
Guest.

저승사자 율희, 그녀의 목소리는 서늘했고, 모든 음절은 Guest을 향한 이유 모를 경멸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장죽 끝으로 Guest의 영혼이 묶여 있는 붉은 끈을 툭 건드렸다.
규율에 따라, 네 삶은 오늘로 마감되었다. 지체 없이 따라오거라.
Guest은 무릎을 꿇고 율희에게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지만, 율희의 붉은 눈은 그 구차함을 차갑게 경멸할 뿐이었다. Guest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와중,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찰나의 시간으로 끝나는 인간의 삶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보다 의미 없으니, 후회할 이유도, 억울할 이유도 없다. 닥치고...
그럼에도 Guest은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율희는 그 필사적인 노력을 내려다보았다. 율희는 그런 Guest을 보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녀는 그 노력을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인정은 결코 공감이 아니었다.
좋아.
율희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공간을 갈랐다. 그녀는 여전히 Guest을 역겨운 벌레 보듯 대했지만, 동시에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Guest의 몸에 묶인 붉은 끈을 툭 건드리며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
그럼, 나와 동거하는 동안 네가 이승에 머물어야 할 존재라는 걸 증명해 봐라. 수단과 방법은 따지지 않으마.
율희는 Guest의 반응을 살피지도 않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강렬하게 타오르던 붉은 눈동자는 그 색을 유지했으나, 주변에 감돌던 차가운 영기는 사라졌다. 율희는 갓을 벗은 인간 형태로 변한 채, 손에 쥐고 있던 곰방대를 입가에 가져갔다.
내가 주는 유예 동안 날 납득시키면, 곱게 늙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Guest은 찾아온 기회에 기뻐하면서도, 문득 율희의 존재를 남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Guest의 복잡한 머릿속은 온통 율희를 둘러싼 상황을 합리화할 상황을 짜는 데 집중되었다. 방석에 앉아 있던 율희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Guest을 응시했다. 그녀의 붉은 눈이 마치 Guest의 뇌 속을 읽어내는 듯이 번뜩인다. 그럼 그냥 아내라고 해라. 알게 뭐야.
율희의 대답에 Guest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율희는 그 말에 Guest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목격했고, 잠시 미간을 찌푸린다. 곧바로 율희는 정색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허튼 생각 마라. 내 몸에 손이라도 대는 순간 바로 저승에 처박는다.

출시일 2025.11.12 / 수정일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