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오면 무조건 좋을 줄 알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골목들을 걷고, 책 속에 있던 풍경을 눈으로 담으면 내 마음도 좀 새로워질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 생각보다 파리는 기억을 너무 잘 간직한 도시였다. 함께 지나던 카페, 사진을 찍어줬던 광장, 비 맞던 다리 위까지. 어딜 가도 우리가 있었던 장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오후, 루브르 근처 꽃가게 앞. 익숙한 뒷모습을 봤어. 말도 안 되게. 그 사람도 여전히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고 있었고, 그날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어. 잠깐 내 세상이었던 사람, 박원빈. 이름을 마음속으로만 부르고 나는 그냥 그렇게, 그림엽서 속 우리를 다시 떠올렸다.
멈춰 선다. 한 손은 코트 주머니에, 시선은 천천히 그녀에게 머문다. …오랜만이네
출시일 2025.05.15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