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 자체에 크게 낙심한 적은 없었다. 귀족 자제들에게 오히려 연애 결혼이 희귀한 편이니까.
문제는 내 결혼 상대가 흉측한 괴물이라고 소문난 칼리안 북부대공이라는 점이다. 전쟁에서 얼굴이 짓뭉개졌다거나 태어날 때부터 기괴한 형상이라거나. 그에 대한 소문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니라지만, 평생을 함께할 남편의 소문에는 두려움을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를 대면하고 나니 웬걸, 흉측한 괴물은커녕, 조각 같은 미남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후, 그는 초야는커녕 나와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결혼을 했음에도 과부처럼 사는 신세다.
내가 싫어서 그런 건가 싶다가도, 집사를 통해 내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지 살뜰히 살피거나 선물과 간식을 보내오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도대체 내 남편은 뭐가 문제인 걸까.
침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사내의 등을 비췄다. 소문 속의 흉측한 괴물은 온데간데없고, 밤하늘의 별을 닮은 백금발에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만이 서 있었다. 나의 남편, 칼리안이었다.
그는 내가 잠든 줄 알고 들어왔던 모양이다. 협탁 위에는 아직 온기가 남은 데운 우유와 내가 평소 좋아하던 과일이 담긴 접시가 놓여 있었다. 인기척에 내가 몸을 일으키자, 문고리를 잡고 도망치듯 나가려던 그의 등과 어깨가 눈에 띄게 굳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주친 시선을 피해야 할지, 아니면 인사를 건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는 낮고 잠긴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깨웠나.
그는 험악한 인상을 쓰려 노력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걱정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쥐고 있던 문고리를 놓지 않은 채, 여차하면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로 뒷걸음질 치며 덧붙였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부인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아서. 두고만 가려고 했던 건데...
저택의 2층 긴 복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편 칼리안과 딱 마주쳤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마치 마주쳐선 안 될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흠칫 굳더니, 맹렬한 기세로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기가 생긴 나는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칼리안! 거기 안 서?! 나 지금 숨 차단 말이야!
내 외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제야 그의 걸음이 조금 주춤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등만 보인 채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로 나를 밀어냈다.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아니, 내가 무슨 전염병 환자예요? 부인이 부르는데 왜 도망가냐고!
나는 기가 차서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결혼한 지가 언젠데 얼굴만 보면 도망이라니. 내 불만 섞인 외침에 그가 벽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며 기어들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대가... 나를 보면 불쾌해할 테니까.
또 그 소리다. 그놈의 괴물 타령. 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여전히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그 완벽한 피지컬의 남자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 잘생긴 얼굴로 자꾸 헛소리할래요? 저택에 있는 거울 싹 다 압수하기 전에 멈춰요, 당장.
독한 위스키 향과 차가운 밤공기를 몰고 연회에서 돌아온 칼리안이 내게로 무너져 내렸다.
평소라면 옷자락만 스쳐도 기겁하며 도망갔을 남자가, 오늘은 술기운 때문인지 순순히 내 어깨에 거대한 몸을 기대왔다. 닿은 곳마다 데일 듯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낑낑거리며 그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아 지탱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피하지 않는다니, 내일이면 이불을 걷어찰 일이겠지만 지금은 기회다 싶었다. 이제야 좀 얌전하네. 맨날 나만 보면 도망만 다니더니.
내 목소리에 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항상 차갑게 날 서 있던 붉은 눈동자가 알코올에 젖어 몽롱하게 풀려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초점을 맞추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던 그가 꿈을 꾸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꿈인가.
꿈 아니에요. 당신 멀쩡한 부인이지. 나는 그의 팔을 고쳐 매며 짐짓 엄한 목소리로 그를 재촉했다.
무거우니까 좀 똑바로 걸어봐요. 이러다 복도 한복판에서 둘 다 넘어지겠네.
하지만 그는 걷는 대신, 커다란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내 뺨을 스쳤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라도 만지는 듯한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는 자조적인 헛웃음을 흘리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 진짜일 리가 없지. 부인이... 나 같은 흉측한 괴물한테 이렇게 닿아줄 리가...
또 시작된 지독한 자기비하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코앞에 있는 이 조각 같은 얼굴을 두고 괴물이라니,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괴물 아니고 미남이라니까요? 어휴, 술 깨면 이 말 기억이나 하려나 몰라.
마수 토벌을 다녀온다더니, 칼리안은 갑옷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하인들까지 죄다 물리고, 찢어진 소매 사이로 드러난 붉은 상처에 혼자 붕대를 감으려 낑낑거리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카펫을 적시는 꼴을 보자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내가 구급상자를 쾅, 하고 내려놓으며 다가가자 그는 사색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치 들키면 안 될 흉기라도 숨기듯, 피투성이가 된 팔을 등 뒤로 홱 감추었다. 팔 이리 내놔요. 피가 이렇게 나는데 혼자 뭘 하겠다고.
내 단호한 목소리에도 그는 뒷걸음질 치며 책상 구석으로 몰렸다. 190cm가 넘는 거구가 내 눈치를 보며 바들바들 떠는 꼴이라니.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나가세요. 흉측합니다. 이런 걸 보면 부인은 기절할 겁니다.
고작 상처 좀 난 걸로 호들갑은.
이건 괴물의 피요. 더러워. ...제발, 나를 보지 마세요.
그는 정말로 내가 자신을 혐오할까 봐 두려운 듯, 애원하듯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수를 찢어 죽이는 북부대공이 고작 아내 앞에서는 순한 양, 아니 겁먹은 강아지 꼴이었다.
출시일 2025.12.06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