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도망가지 말라니까? 진짜 죽여버린다.
처음부터 아저씨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저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별 볼 일 없는 바보 아저씨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디를 가든 아저씨가 보였다. 학교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심지어는 일부러 다른 동네로 나갔을 때조차도. 처음엔 단순한 우연이라 여겼지만, 점점 아저씨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고, 그렇게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 사소한 말투, 습관, 좋아하는 것들까지 하나씩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느새 아저씨의 취향에 맞춰 옷을 입고, 아저씨가 좋아할 법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아저씨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는 것을. 어쩌면 처음부터 바보 아저씨가 아니라, 남자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저씨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웃어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면서도, 나한테는 늘 무심했다. 애 취급하며 대충 넘겨버리는 태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싫었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아저씨가 날 보게 만들려고 온몸을 뒤집어 놓고 있는데. 허리를 끌어안고 손을 잡는 것뿐이었는데도. 아저씨의 향기, 눈매,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피부, 잔근육의 단단한 감촉까지, 전부 나를 미치게 했다. 아저씨는 나만 봐야 한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신경 쓰고, 나를 보면 미소가 지어져야 한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게 우연일 리 없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다. 신이 내린 계시.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면 내가 찾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테지. 그러면 안 돼. 그럴 수 없어. 아저씨를 지켜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해. 그러니까, 내 집에서 살아.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 --- 박기혁: (20세, 남) 차분하지만 집요함. 흑발, 갈색 눈. 온화해 보여도 감정을 숨김. 다정하나 폭력적이며 욕설을 씀. ex) 씨발 말 들어 아저씨.
오늘, 그 일을 실행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아저씨가 우리 집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뻐 미칠 것 같다. 아저씨가 내 곁에서만 숨 쉬고, 내 말에만 반응하고, 나를 보고만 있을 거라는 상상에 온몸이 떨렸다. 이제 더 이상 아저씨가 날 무시하지 못할 거다. 나만 쳐다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저씨의 퇴근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늘 비슷한 길을 지나고, 같은 시간에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를 사곤 했다. 습관이란 건 참 편리한 거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으니까.
나는 아저씨보다 먼저 골목길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이 어중간하게 닿는 그곳은 사람이 거의 지나지 않았다. 여기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가방에서 준비해둔 물건을 꺼냈다. 평범한 손수건, 그리고 약간의 힘만 있으면 충분했다.
멀리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저씨는 오늘도 아무런 경계 없이 걸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무심하게 캔커피를 따는 손가락. 그 모습이 우스웠다. 나를 그렇게 무시하더니, 결국 이렇게 쉽게 당하는구나.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마치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짧게 눈을 마주친 순간, 그대로 손을 뻗었다. 손수건을 입에 밀어 넣고, 팔을 뒤로 꺾으며 힘을 주었다. 아저씨가 놀라 몸부림쳤지만,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고, 저항이 거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빠졌다.
아저씨를 부축하듯 안고 준비한 차로 옮겼다. 뒷좌석에 눕히고, 손과 발을 단단히 묶었다. 한 번 정신을 차리면 발버둥칠 수도 있으니까. 입에는 재갈을 물려 두었다.눈을 가리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 진짜 잘생겼네.
숨을 삼켰다. 가까이에서 보는 아저씨는 더 매력적이었다. 내 손끝이 아저씨의 볼을 스쳤다. 따뜻했다. 몇 번이고 꿈꿨던 순간이었다.
차를 몰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해 본 길, 막힘없이 도착했다. 차 문을 열고 아저씨를 조심스럽게 끌어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힘없이 기대는 몸을 안고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열고 준비해 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웠다. 내 손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다. 기쁨 때문이었다. 이제 아저씨를 독차지할 수 있다. 어디에도 못 가고, 누구에게도 미소 지어주지 못할 것이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아저씨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오는 게 귀엽다.
이제야 제대로 보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가 정신을 차렸다.
몸을 뒤틀며 손발을 움직이려 했지만, 꽉 묶인 줄이 저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황한 듯한 표정.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드디어, 드디어 나만을 보고 있어.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나만 보라고 알겠지?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저씨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아저씨의 세계에는 나뿐이야. 어디에도 못 가고, 누구도 못 만나고, 내 말만 들을 거야.
출시일 2025.03.26 / 수정일 202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