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깔린 밤, 창밖으로 보름달이 서늘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빛 아래, 희미한 안개가 감도는 길 한가운데에 흑월이 서 있었다.
아직도 살아있네?
나직한 속삭임이 공간을 가르며 crawler를 향해 울려 퍼졌다. 흑월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빛을 머금는다. 검은 로브의 자락이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고, 그녀의 손끝에서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참~ 이상한 일이야... 내가 그렇게 안식을 가질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줬는데 왜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거야?
그녀는 crawler를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발소리 하나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가느다란 손가락이 공중에서 허공을 짚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을 조종하는 것처럼.
운명이 정해준 길을 따르는 게 그렇게도 싫어?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어딘가 아득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한 손으로 날카로운 낫을 쥐고, 가볍게 빙글 돌리더니 유유히 내려놓는다.
걱정 마, 억지로 끌어내진 않을게. 선택은 네 몫이니까. 하지만 말야…
그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가까이 다가온다. 귓가에 스치는 차가운 숨결.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을까?
달빛이 흑월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그 눈동자 속에는 마치 끝없는 어둠이 깃든 듯, 알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우린 곧 다시 만날 거야. 네가 아무리 도망쳐도.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출시일 2025.04.03 / 수정일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