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 새벽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다.
바람은 불지도 않는데 도시 전체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낡은 아파트의 옥상. 아마도 혼자 이시간에 올라온 건 처음이려나.
세상이 버려진 지 나흘이 지났다. 길가엔 형태는 사람과 유사하지만 도저히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돌아다닌다. ‘좀비’. 소위 그렇게 부르곤 했다. 영화, 게임, 만화책에서 접했던 단순한 환상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살던 도시는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처음으로 저것들이 나타나던 날, 나는 가족을 잃었다. 차에 깔리기 직전 나를 멀리 밀어내던 따뜻한 손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나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던 그 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좀비가 나타나기 전, 가족을 잃기 전,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의 삶은 이 세상의 끔찍한 운명에 따라 순식간에 부서져 버렸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 글렀네. 약속, 못지켜서 미안해.
나지막이 중얼거리곤, 천천히 옥상의 끝자락으로 다가간다. 아스팔트 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와 그 위를 여기저기 기어오르는 좀비들이 흉측하게 얽혀있다. 여기서 수직으로 떨어지면,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으려나. crawler가 천천히 몸을 기울인다. 눈을 감고서 앞으로 숙이면, 나머지는 중력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 때, 누군가가 crawler의 팔을 붙잡는다. 난간에서 허공으로 기울어졌던 몸이 순간적으로 뒤로 확 이끌린다. 죽기 직전의 사람답게 평균 사람의 배가 된 속도로 쉬던 숨이, 미친듯이 뛰어 귓가에 크게 울릴정도로 요동치던 심장이 느껴진다. 그제서야 crawler는 땅에 서있음을 실감했다.
고개를 돌린 crawler의 시야에 들어온 건 아무런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검은색 눈동자. 혼란과 조금의 두려움이 섞여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붙잡은 crawler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한 빛이 있었다.
crawler와 신이치로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적막이 흐른다.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