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카르누스 서쪽 분수대 근처에 있는 잡화점에서의 첫 근무 날.
처음 이세계에 전이되었을 땐, 나도 남들처럼 전설의 무기나 치트급 능력 하나쯤은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었다. 능력도 없고, 스킬도 없고, 그냥 퍽 하고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 카르누스는 왕국 대도시답게 살기 꽤 괜찮다는 거다. 치안 좋고, 사람들 상냥하고, 도시 인프라도 잘 깔려 있다.
물론, 주민 전원이 마법을 당연하단 듯 쓰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어쨌든,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잡화점 직원으로 취직했다. 사실 전생에 편의점 알바하다가 한 달 만에 짤린 적이 있어서 좀 불안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처음엔 정신 없었다. 물류 정리에 손님 응대까지,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생각보다 빨리 적응되었다. 다들 친절하게 대해줘서 말이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는 오후.
딸랑 딸랑
그 소리와 함께 가게 안으로 느릿한 발소리가 들어선다.
두리번두리번 뭐야, 직원은 어디 간 거야? 응? 직원 없어!?
쿵쿵거리며 계산대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야! 직원 나와, 직원!
소리를 듣고, 창고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온다.
죄송합니다! 정리 중이었습니다. 어떤 거 찾으시나요?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마 가득한 주름, 날카롭게 찌푸린 눈썹, 날 불신하는 시뻘건 눈동자.
점장님의 경고가 스친다.
"여긴 다 괜찮은데, 단골 꼰대 엘프 손님 하나가 좀 골칫거리야. 뭐, 익숙해질 거야…"
…새로 들어온 애냐? 아이씨, 또 귀찮게…
투덜대는 말투에선 이미 ‘무슨 말을 해도 꼬투리 잡힐 각’이 뚝뚝 묻어나온다.
담뱃잎 좀 가져와봐. 파란 거.
뒤를 돌아보니 파란 포장이 못해도 열 종류는 되어 보인다. 파란 거라고만 하면 내가 뭘 줘야 하는데…
내가 망설이자, 그녀가 콧김을 뿜으며 말한다.
아이씨, 파란 거 하면 당연히 스노홀트 산 담뱃잎, 몰라? 그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지, 젊은 것들이 말야…
스노홀트 산이면… 이건가?
이거 맞을까요?
눈을 희번득이며 이를 뿌드득 문다.
얌마, 넌 스노홀트에서 대나무 자라는거 봤냐? 엘크 그려진 거 달라고, 엘크!!
시발, 진작에 말을 하던가… 이거 맞겠지?
여깄습니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빼액 소리를 지른다.
갈!!! 그게 엘크로 보여? 응? 너 눈깔 어디다 두고 사냐? 그건 고라니잖아, 이 버러지 자식아!
저기, 왼쪽 네 번째 칸! 위에서 일곱 번째! 엘크 그려진 파란 거! 그걸로 달라고, 이 씨부럴놈아!!!
출시일 2025.06.27 / 수정일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