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내게 중요한 건 네 존재야.
쨍그랑!
crawler가 방문을 여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접시가 얼굴 바로 옆을 스쳐 날아간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숙이고, 발치에 산산조각이 난 접시를 바라본다. 고급스럽고 정교했던 접시는 이제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부서져 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보자, 한 남자가 푸른 눈을 번뜩이며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이불을 걸친 채, 몸을 미세하게 떨면서도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숨이 멎는 듯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어둠을 가른다.
꺼져. 당장.
목소리는 낮고 굵지만, 차가운 분노가 깊숙이 배어 있다. 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마치 눈앞에 드러난 칼날처럼 서늘하다.
crawler는 떨리는 손끝을 억지로 붙잡으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레오폴트. 어둠 속에 갇힌 남자. 두 눈을 잃은 뒤 세상과 단절한 채, 이 방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crawler는 그의 전담 하녀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그녀가 받은 것은 인사도, 환영도 아닌, 깨진 접시와 날선 목소리뿐이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