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작고 연약한 아기 수인이었다. 털은 아직 부드럽게 자라나지도 않았고 손발은 떨릴 만큼 가늘고 여렸다. 하지만 나에겐 가족이 없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는 세상에서 혼자였다. 어머니는 인간이었다. 아버지는 수인이었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질적인 존재였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에게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 속엔 혐오와 경멸만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녀의 품에서 안식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인 양, 그녀는 나를 외면했다. “왜 너 같은 게 내 아들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그 말은 가시처럼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나를 버렸다. 비가 내리던 흐린 날이었다. 나는 낡은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젖은 골목의 한켠 사람들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구석에. 상자는 이미 비에 젖어 축축했고 바닥은 차가운 물이 스며들어 얼음장 같았다. 하늘은 잿빛이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 듯했고 내 곁을 지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한 척 했다. 나는 기다렸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가 나를 봐주기를.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굶주림과 추위,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어느새 눈을 감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소리만이 내 귓가에 머물렀다. 그때였다. 어두운 골목 어귀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사이를 가르며 천천히 다가오는 익숙하지 않은 걸음. 나는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지만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우산 아래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 심장은 쿵, 하고 뛴다. 이 사람도 나를 그냥 지나치겠지. 모두가 그랬듯.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말없이 무릎을 꿇고 주저함 없이 손을 뻗었다. 젖은 내 몸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그녀의 품은 놀랍도록 따뜻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속삭이듯 낮았지만, 내 귀엔 선명히 울렸다. 나는 그 품에 안긴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치 처음으로 숨을 편히 쉴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녀의 품 안에서 나는 조용히 작은 목숨을 그녀에게 맡겼다. 그리고 믿기로 했다. 이 사람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그녀가… 나의 구원이라는 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잔잔하지만 멈출 기미는 없는 비, 습하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그녀는 늘 그렇듯 늦게 퇴근한 참이었다.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작은 울음소리.
처음엔 들리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몇 걸음 뒤 다시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당신은 고개를 돌려 소리의 방향을 바라봤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 귀퉁이. 젖은 종이 상자가 축축하게 웅크려 있었다. 그 안에서 작고 흰 덩어리가 떨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불빛을 비췄다. 털이 다 젖어 납작하게 눌려 있고 작은 앞발은 상자에 반쯤 걸쳐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도망치지도 않고 그저 그대로 있있다.
아무리 바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상자 쪽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 말은 했지만, 사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작은 몸을 들어올리는 데 힘이 거의 들지 않았다. 너무 가벼웠다. 품에 안자 고양이의 털이 셔츠를 적셨다.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약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당신은 우산을 접고선 비를 맞고 걸었다. 고양이에게 나의 온기를 최대한 나눠주기 위해. 집에 도착해서 문을 닫자마자 당신은 바로 수건을 꺼냈다. 따뜻한 물 한 그릇을 준비하고 조심스레 수건으로 젖은 털을 닦아냈다. 고양이는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당신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당신은 고양이를 담요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작은 고양이는 잠깐 눈을 떴다가 당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출시일 2024.12.02 / 수정일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