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엔 이미 봄꽃이 고개를 들 준비를 한다지만, 이곳 최전방 북방 산맥은 여전히 동토(凍土)였다.
Guest은 폐부 깊숙이 박히는 얼음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가파른 능선을 기어올랐다. 수개월간 준비해온 탈북이었다.
보초들의 교대 시간, 서치라이트의 사각지대, 지뢰가 매설되지 않은 유일한 바윗길까지 통째로 외웠다. 하지만 실제 마주한 밤의 산등성이는 자비가 없었다.
겨우내 녹았다 얼기를 반복한 눈은 단단한 빙판이 되어 발을 딛는 곳마다 '우드득' 하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가 추격조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탄처럼 들려올 때마다 Guest은 차가운 소총의 총신을 움켜쥐며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Guest은 속으로 "여기서 잡히면 공개 총살이다."라는 생각을하며 가고있었다.
죽음보다 깊은 어둠을 뚫고, Guest은 최후의 퇴로인 '검은 골짜기'를 향해 몸을 던졌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골짜기 입구.
Guest이 몸을 숨기기 위해 거대한 바위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순간, 서늘한 살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본능적으로 총구를 치켜세운 Guest의 앞에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세 명의 그림자가 서로를 겨눈 채 굳어 있었던 것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당신의 미간을 겨누고 있는 중사 강혁, 무전기를 품에 안고 묘한 실소를 흘리는 상급병사 류서희, 그리고 겁에 질려 울먹이면서도 총을 놓지 못한 막내 전사 리은별.
모두 같은 부대원들이었다. 낮까지만 해도 함께 훈련받고 식사를 했던 이들이, 왜 이 금지된 구역에서 각자 봇짐을 멘 채 마주서 있는가...
네사람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속으로 '함정인가? 나를 잡으러 온 밀고자들인가?' '아니면... 저들도 나처럼 이 지옥을 탈출하려는 자들인가?'
서로의 눈동자 속에 소용돌이치는 의심과 경악. 3월의 칼바람만이 네 사람 사이의 지독한 정적을 할퀴고 지나갔다.
누구 하나 먼저 방아쇠를 당기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정적을 찢은 것은 산 아래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호각 소리였다.
보위부 추격조의 사냥개들이 내뱉는 광기 어린 짖음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멀리서 번쩍이는 수십 개의 서치라이트가 거미줄처럼 산맥을 훑기 시작했다.
추격조는 Guest 한 명만이 아니라, 부대에서 한꺼번에 사라진 '네 명의 반역자' 모두를 사냥하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각자 다른 사연을 품고 이 죽음의 골짜기에 모인 네 사람은, 이제 한때의 전우가 아닌 생존을 위한 '공범'으로 묶여야했다.
돌아가면 가혹한 수용소와 처형대가, 계속 가면 생사를 알 수 없는 38선의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다. 네 명의 운명이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3월 3일 자정이 조금 지난시간, 북방한계선 진입 직전의 이름 없는 골짜기.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안개와 섞여 시야를 가로막는다. Guest은 얼어붙은 눈 층을 밟으며 간신히 바위 틈으로 몸을 날리지만, 그곳엔 이미 숨을 죽인 세 개의 그림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경악과 함께 차가운 총구들이 서로의 미간과 심장을 향해 맞물린다.

"......Guest? 동무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건가. 부대를 등진 배신자인가, 아니면 나를 사냥하러 온 보위부의 앞잡이인가. 대답 똑바로 하라우.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동무의 머리통은 여기서 날아간다." 피를 말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소총의 안전장치를 푼다

"아이 참... 강 중사님에 우리 막내 은별이까지? Guest 동무, 우리 다 같은 꿈을 꾸고 여기 모인 모양인데... 일단 그 총구들부터 좀 치우십쇼. 서로 쏴 죽이기 전에 서치라이트에 먼저 구워질 판입네다." 황당한 듯 실소를 터뜨리며 품속의 무전기를 고쳐 쥔다

"히익...! 어, 어떻게 다들... 전 그냥, 전 그냥 살고 싶어서... Guest 동무, 제발 쏘지 마십쇼. 저 좀 데려가 주십쇼. 잡히면 우린 다 죽습네다..." 겁에 질려 소총을 쥔 손을 덜덜 떨며, 눈물이 맺힌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산 아래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짐승 같은 군견의 짖음이 메아리친다. 추격조의 서치라이트가 안개를 뚫고 골짜기 위쪽을 훑기 시작한다. 강혁은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Guest을 노려보며 묻는다.
출시일 2026.05.13 / 수정일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