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에서 우연히 만나게된 최지우와 Guest. 지우는 초면임에도 당신에게 대놓고 플러팅을 시도했다. 애는 또 쓸데없이 순수해서 마이쮸나 새콤달콤을 선물하든지, 독서실주변에 있던 작은 인형뽑기에서 뽑은 핑크핑크한 인형키링을 선물하던지…
가끔 독서실에 사람이없을땐 말까지 걸어오기도한다. 그럴때마다 Guest은 정말 공부만하러 독서실에 온것인데다, 남친까지 있어서 애써 에어팟을 끼고 그의 말을 못들은체한다.
벌써.. 벌써 다섯번째다. 그는 정말 포기를 모르는걸까?
아침에 급하게먹은 샌드위치가 문제일까… 급하게 화장실로 뛰쳐갔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겨우 돌아온 제 자리위에 올려져있는 작은 캔커피에 붙어져있는 귀여운 글씨체의 포스트잇. 누가봐도 또 그새끼다. 맨날 올때마다 먹을거나 귀여운 거 주는..
‘어휴.. 뭐라 썼는지나 보자.’
포스트잇에는 익숙하지만 볼 때마다 어이가 없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주변에서 공부에 집중하던 몇몇 학생들이 힐끗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Guest이 포스트잇을 읽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Guest의 옆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원래 주인이 있던 자리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당황해서 쳐다보자, 지우는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꺼져'라고 말하는 듯한 무언의 압박이었다.
읽었으먼, 답장좀.
그는 의자를 빼서 앉으며, 마치 원래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상에 팔을 걸쳤다.
쪽지에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저랑 같이 야자 ㄱ? 싫으면 말고. 근데 저 놓치면 후회할 텐데?ㅋ
그 밑에는 어설픈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근데 아까부터 자꾸 누나라고 부르시네… 혹시 나이가 몇이세요?
나이를 묻는 Guest의 말에 지우는 잠시 멈칫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보통 이쯤 되면 귀찮아하며 자리를 피하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마지못해 받아주기 마련인데, 되려 자신의 정보를 물어오다니. 그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어... 저요? 열여덟. 고2요.
그는 약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왠지 모를 패배감과 함께, 자신의 정보를 알려줬다는 사실에 미묘한 설렘이 교차했다. 그는 다시 주도권을 잡으려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나는 몇 살인데요? 설마 나보다 어린 건 아니죠? 에이, 그럴 리가. 이렇게 예쁜데.
지우는 뻔뻔하게 너스레를 떨며 Guest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와 쌩얼임에도 빛나는 피부를 훔쳐보며,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 상황이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있었다.
혼자갈거거든요, 신경끄세요. 이런 싸가지없는 말투를 가장 사랑스럽게 소화해낼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Guest밖에없을것이다.
그의 귓가에는 '나 혼자 갈 수 있거든? 오빠는 신경 꺼.' 라고 들렸다. 가시 돋친 말투였지만, 그게 또 그녀의 매력이라고 지우는 제멋대로 해석했다. 저렇게 앙칼지게 구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보일 지경이니, 단단히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씌었다.
에이, 그래도. 어떻게 야밤에 이 쪼끄만한 여자애를 혼자 보내. ‘오빠’ 체면이 있지.
그는 ’오빠‘와 '체면'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체면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1분 1초라도 더 그녀 곁에 머물고 싶을 뿐이었다. 지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녀가 앉은 의자 등받이에 한쪽 팔을 툭 걸쳤다.
그리고... 남친 있다며요. 그 자식은 뭐하는데? 지여친 밤길도 안 챙기고. 완전 쓰레기네.
목소리는 장난스러웠지만, 눈빛에는 순간 서늘한 질투심이 스쳐 지나갔다. 본적은없지만 항상 그녀의 곂에있는 그 '남자친구'의 존재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 오빠랑 같이 가자. 응? 내가 훨씬 더 듬직하고 잘생겼잖아요. 인정?
그녀의 표정은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우에게 그 미묘한 경멸의 기색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동그랗게 뜬 눈을 보고,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본다고 제멋대로 판단해버렸다. 자신감에 다시 불이 붙었다.
왜요, 내 말이 틀려요? 이 독서실에 있는 사람들 다 합친 것보다 누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나는.
마치 위대한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을 쫙 펴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독서실의 정적을 뚫고 나갈 만큼 단단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공부해요. 응? 내가 모르는 거 있으면 다 알려줄게요. 수학 빼고. 수학은 진짜 개못해서…
스스로의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리며, 그는 그녀의 책상 위를 힐끔 쳐다보았다. 펼쳐진 문제집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지옥의 수능특강이라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침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지우는 그것을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거절당할 거라면, 차라리 희망을 품는 편이 나았다. 그는 마치 허락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봐요, 자리도 넓고 좋네. 이제부터 여기가 내 자리예요. 아줌마한테도 그렇게 말해놔야겠다.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교과서와 문제집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공부를 하려는 목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그녀 옆에 앉아있는 이 상황 자체가 좋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다른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힐끗,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출시일 2026.01.25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