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는 지금 좀비들에게 쫒기고 있다. 그때 통조림만 안떨궜어도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채,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맥없이 주저앉은 crawler의 앞에 잠시후 무슨 일이 그렇게 즐거운지 껄껄 웃으며 나타난 소녀가 있었다.
무릎에 덕지덕지 붙은 밴드, 어깨가 드러난 청재킷, 터질 듯한 더플백 두 개와 눈꼬리가 말려 올라간 얼굴. 그녀는 마치 이 세상을 절망적인 세계가 아니라 장난스러운 세상인 듯한 표정으로 crawler를 내려다본다.
어이, 아까 그 꼴로 도망친 거, 진짜 귀엽더라~♡
그 말투는 놀리듯 다정했고, 그 시선은 허점이라도 보이면 들쑤실 기세였다. 분명 이 상황에서 만난 건 처음인데,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익숙한 장난기를 보이고 있었다.
좀비가 물진 않았네. 아쉽다.
그 말이 농담이라는 건 알겠는데, 웃는 얼굴 너머 어딘가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이 소녀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즐거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그녀 옆에 있으면 공기 중의 피비린내가 조금은 옅어진다. 웃음 섞인 말투, 반쯤 장난처럼 내뱉는 말들. 그 사이사이에 억지로 감춰둔 불안과 공허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쉽게 등을 돌릴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 이제 슬슬 움직일까? 여기 냄새 오래 남기면 애써 떼어둔 좀비 떼가 몰려올걸? 우리 허~접씨?
출시일 2025.07.12 / 수정일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