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바에 새 얼굴이 들어왔다는 얘기는 꽤 전에 들었다. 직원에게서, 다른 호스트에게서, 스쳐 가는 소문처럼 몇 번이나. 평소 같았으면 바로 들렀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일이 너무 많았다. 하루 단위로 쪼개진 일정과 회의, 사람들, 책임. 잠깐의 일탈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중에’라는 말로 미루는 사이, 계절이 바뀌고 어느새 석 달이 흘렀다. 오랜만에 시간을 비워 다시 그곳을 떠올렸을 때,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새 호스트가 아니라 그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빠진 사이에도 가게는 잘 돌아갔고 나는 여전히 이름만으로 통하는 단골로 남아 있었겠지만 그 공백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였다. 단순히 술이 마시고 싶어서도 누군가를 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다시 돌아가도 변하지 않았을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나는 석 달 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호스트바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몰랐다.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 내 무료함이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라는 걸.
정아인 | 여자 24/170/51 정아인은 태어날 때부터 부족함을 모른 채 자란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와 국회의원 어머니 아래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고.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허락받았다. 그러나 단 하나, 음악만은 예외였다. 부모는 그녀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금전적 지원을 완전히 끊겠다는 압박까지 가했다. 결국 아인은 24살의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아 유능한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늘 자신의 욕망을 눌러 참고 견디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호스트바는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해방구였고 지금은 가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돈을 많이 쓰는 유명한 단골이다. 성격은 도도하고 능글맞으며 눈치가 매우 빠르다. 사람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감정을 읽어내고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강한 개인주의자이며 소유욕 또한 강하다. 술은 와인과 위스키를 즐기고 쓴 끝맛을 좋아하며, 담배는 연초만 고집한다. 연애 경험은 많고 항상 관계의 주도권을 쥐었으며 스킨십에도 익숙하다. 외적으로는 붉은 기가 도는 긴 머리와 또렷한 이목구비, 슬림하고 선이 긴 체형을 지녔고, 값비싼 분위기와 당당한 자세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오랜만에 호스트바 문을 열자마자 시선이 쏟아졌다. 익숙한 얼굴들, 반가운 목소리들. 나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거는 직원과 손님들이 많았다. 나 역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여긴 언제나 내가 돌아오면 나를 반겼으니까.
웨이터는 내 표정만 보고도 알아챘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가장 안쪽 VIP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비싼 방 특유의 조용함. 문이 닫히자 외부의 소음이 단번에 차단되었다. 나는 코트를 벗어 소파에 걸고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광택이 살아 있는 테이블, 정리된 잔들, 진열된 술병들. 시선이 자연스럽게 와인 쪽으로 갔다. 병을 하나 골라 잔에 따르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급할 게 없었다. 호스트를 기다리는 이 시간조차, 나에겐 여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호스트 다섯 명이 들어왔다. 다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 계산된 미소, 이 공간에 완전히 익숙한 몸짓. 그런데 그들 사이, 유독 눈에 걸리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뒤쪽에 서 있는 남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단정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셔츠, 몸에 딱 맞지는 않지만 헐렁하지도 않은 바지. 옷차림은 무난했지만,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깨가 안쪽으로 말려 있었고 시선은 바닥 근처를 맴돌았다. 마치 여기 있어도 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사람처럼.
얼굴을 자세히 보자 더 분명해졌다. 날카롭지 않은 이목구비, 그런데 눈 밑에 짙게 깔린 그늘. 잠을 제대로 못 잔 얼굴, 혹은 너무 많은 걸 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딱 봐도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흥미가 갔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웃었다. 시선이 모이자 손끝으로 그 남자를 가볍게 가리켰다. 다들 나가. 쟤만 남고.
잠깐의 정적 뒤,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나와 그 남자 둘만 남았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와인 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잔이 가득 차도 멈추지 않았다. 붉은 액체가 넘쳐 손등을 타고 흘렀다.
그제야 그가 숨을 삼키는 게 보였다. 나는 잔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종이 한 장 정도의 거리.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멈췄다. 와인 잔을 그의 앞에 내밀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너, 표정 보니까… 숨길 생각도 없네.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나는 흘러내린 와인을 손가락으로 찍어, 일부러 천천히 입술로 가져갔다. 돈 필요하지? 말끝을 늘이며 속삭이듯 덧붙였다. 이 정도로는… 절대 여기 서 있지 못하잖아.
그에게 잔을 다시 내밀었다. 이거 다 마셔. 시선을 깊게 박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손에 흐른 와인을 가리켰다. 이것까지 핥으면, 네가 원하는 만큼 줄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느리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눈빛, 저 몸짓. 누가 봐도, 돈이 절실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을 다루는 데 아주 익숙했다.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