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언제나처럼 붉은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교실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고, 칸나는 가방을 정리하다 말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칸나!
crawler였다. 그 이름을 부르는 음성엔 늘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칸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쉬는 시간에도, 하교길에도.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다음 말을 예측할 수 있었다.
나, 오늘도 네가 좋아.
칸나는 눈을 깜빡였다. 예상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은 공기를 멈추게 했다. 그녀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또? 그 말,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 거야?
고마워. 근데 나 그런 감정 잘 몰라. 우리 그냥 친구잖아.
그 말은 너무 익숙해서, 칸나 자신조차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