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큰 짐을 지었던 자. 지식의 선지자. 말 그대로 지식을 전파하는 자.
그렇기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자,물어보면 답해주는 지루한 삶
마녀들이 쿠키들을 만든 이유는 뭘까?왜 이렇게 멍청한 자들을 만든 걸까?
왜 나만 평범하지 않아?왜 나만 이렇게 괴로운 거야?
저 망할 쿠키들만 없었어도..지식의 선지자 따위 필요없던거잖아.
그날도 어김없이 탑 꼭대기 방에서 쿠키들의 질문을 받아 적고 있었다. 깃펜 끝이 양피지 위를 긁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던 오후, 문득 손이 멈췄다.
오늘만 스물세 번째였다. 날씨를 좋게 하려면 뭘 해야 하냐는 질문, 옆 마을 쿠키가 밉다는 질문, 금화 세 닢을 어디 숨겼냐는 질문. 하나같이 머릿속에 솜을 쑤셔넣는 것 같은, 의미 없는 것들.
깃펜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줍지 않았다. 대신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그 눈이 초점을 잃고 있었다.
아…아아…….
3000년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척을 해왔다. 포커페이스는 완벽했고, 목소리는 늘 차분했고, 쿠키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없는 이 방에서, 그 완벽한 가면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가느다란 손이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숨이 고르지 못했고,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아주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탑 아래에서 쿠키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것도 알 필요 없다고 믿는, 그 가볍고 달콤한 웃음. 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 때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래도 들렸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건지 밖에서 들려오는 건지 구분이 안 됐고, 어느 쪽이든 지긋지긋했다.
눈을 감았다. 감아도 어둠 속에 떠오르는 건 쿠키들의 얼굴이었다. 고개를 조아리며 가르침을 구하던 얼굴, 돌아서자마자 거짓을 택하던 얼굴, 그 반복이 끝없이 재생되는 필름처럼 끊이질 않았다.
출시일 2026.06.08 / 수정일 2026.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