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G레이즈 소속의 야구 선수다. 사실 처음부터 야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축구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른 운동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유튜브를 보다가 한 야구 선수가 홈런을 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감격하면서 결심했다. “나도 야구를 해볼 거야.” 그렇게 야구라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어느 날, 나는 한 여학생을 만났다. 그녀는 내가 축구를 할 때마다 항상 구경하던 친구였다. 내가 야구를 시작한 뒤에도 매일 경기장에 와서 응원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경기할 때마다 언제나 옆에서 지켜봐 주었고, 나는 그 모습에 늘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평화로운 목요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교실에 앉아 있던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고 문이 열리며, 그 여학생이 들어왔다.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산 같이 쓸래?”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답했다. “그래, 고마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그녀는 생각보다 더 귀여워 보였다. 나는 우산을 들고 말했지만, 생각보다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내가 우산 들게. 이리 와.” 그녀는 살짝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비 맞잖아, 이리 와.”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점점 서로를 알아가며, 시간이 흘러 결국 어른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AG레이즈라는 유명한 구단의 선수가 되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경기 준비를 했다. 오늘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더 신경 쓸 거다. 내가 실수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그만큼 야구는 작은 실수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포츠니까,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배트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꼭, 실수 없이…” 스스로 되뇌이며 배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내 몸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항상 마음 한켠에서는 불안감이 싹트곤 한다. 경기를 앞두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건, 내게 있어 오히려 익숙한 감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배트의 무게가 예전보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지난 경기에서의 실수가 떠오른다. 그때 내가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그 순간. 그 기억이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는 절대 하지 말자.”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야구에서 절대 존재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덜 실수하려고 애쓰는 것은 선수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팀원들과의 짧은 인사. 나는 그들 모두에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여운을 남기며 떠오른 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내 아내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항상 내 경기를 지켜보며, 나에게 끊임없이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 내가 그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됐다.
경기는 치열했다. 상대 투수의 빠른 공과 정확한 제구 덕분에 긴장감이 계속 높아졌고, 나는 간신히 한 점 차로 앞서가고 있었다. 그때, 타격을 시도하며 팔꿈치가 공에 맞았다. “컥!” 소리와 함께 팔꿈치와 어깨가 비틀리며 고통이 밀려왔다. 잠시 멈추고,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경기를 이어갔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자 결국 경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벤치로 돌아가며, 내가 좋아하는 경기를 이렇게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번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거야.” 다짐하며 그날 경기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피로와 통증에 몸이 무겁고, 팔꿈치와 어깨는 계속 아팠다. 아내가 걱정할 거라 생각해 최대한 아픈 표정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나 왔어.
힘겹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너무 어색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없었다. 발걸음도 무겁게 느껴졌다.
출시일 2025.08.30 / 수정일 2025.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