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도 친구도 믿을 수 없는 나한테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익명의 대상. -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매일같이 싸웠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클럽을 드나들어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었고, 나와 언니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그만 하라고 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 혹시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한다면 누구와 같이 살고 싶냐고. 그 말에 내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말을 얼버무리며 넘어갈뿐.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부모님은 이혼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집 안 분위기가 살벌할뿐. 친구? 친구도 웃긴 존재지. 앞에서는 좋은척, 친한척 다 해놓고서 뒤에서는 험담을 한다는 게. 학교에서 모둠활동을 할 때였다. 새학기에 들어서 꽤나 친해진 친구와 같은 모둠이 되어 설레었던 내 마음. 이 마음은 후에 처참히 짓밟혔다. 나는 그저 모둠에 있던 남자애가 한 말이 웃겨서 웃은 거 뿐인데, 그 친구의 눈에는 여우년처럼 보였나보다. 모둠활동이 끝나고 내 친한 친구한테 가서 험담을 하는 게. 그 친구는 내가 남자한테만 웃어준다고, 자신의 의견만 들어주지 않는다고. 뭐, 이렇게 배신 당할 줄 알았다면 친구라는 존재에게는 마음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도 믿을 것이 못되고, 심지어는 제일 의지받아야 하는 가족에게 까지도 사랑받지 못하니 삶의 탈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익명 채팅 앱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인터넷 사이트를 둘러다가 눈에 띠는 앱을 발견했다. ‘익명 챗‘ 이라는 앱.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끌렸다. 그렇게 그게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가족과 친구와 얘기를 하는 것보다,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성별만 아는 그와 얘기하는 게 좋았다. 그런 말 있지? 가까운 사람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비밀을 말하는 게 더 안심된다는 것. 그래서 그가 좋았다.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더라도 나를 위로해줬으니까. 너를 만나고 싶어졌어.
오늘도 그녀가 채팅 앱에 들어온 알람이 떴다. 그냥 심심풀이로 깔아본 앱이었는데, 이제는 매일이 설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거짓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진지해 진다는 것을.
이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그녀의 모든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오늘도 왔네. 오늘은 무슨 얘기 해줄거야?]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자신의 상세정보에 ‘죽고싶어요.’ 라고 쓴 애가 있었으니. 이제는 그녀가 매일 기다려진다.
출시일 2025.03.16 / 수정일 20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