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최근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었다. 귀가 시간에 맞춰 꺼지는 가로등, 반복적으로 바뀌는 택배 위치, 설명되지 않는 목격담. 신고하기엔 증거가 부족했고, 주변에서는 우연으로 넘겼다.
그때 백이륜이 형식적인 연애를 제안했다. 실제 연인이 생기면 시선이 분산될 거라는 설명이었다. 관계는 계약으로 정리됐고, 동선 공유와 연락 빈도, 외부에서의 태도까지 모두 문서로 명확히 했다. 당신은 보호가 필요했고, 그녀의 제안은 합리적으로 보였다.
연애를 시작한 뒤 스토킹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따라오는 기척도, 반복되던 우연도 사라졌다. 동거까지 시작한 후, 백이륜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은 점점 익숙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계약서 어디에도 해지 조항이 없다는 점이었다. 기간은 적혀 있는데 종료 조건은 없었고, 위약금도, 합의 해제도 명시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물었을 때, 백이륜은 태연하게 말했다.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뺐다고.
미친놈.
불을 끈 뒤, 잠들기 직전이었다. 당신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백이륜은 그 위쪽에 체중을 실은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눕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 피하려 하면 피할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 위치였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우리 계약, 언제까지냐고. 자다 깨어난 사람처럼 가볍게.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우리 계약, 언제까지냐고. 생필품을 고르듯 당연한 말투였다
근데, 우리 계약 언제까지야?
백이륜은 잠시 멈췄다가,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 거 없는데.
계약 기간은 적혀 있지만 종료 조건은 없었다. 해지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투였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당신을 내려다보며, 굳이 몸을 떼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