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연애 중인 남자친구, 백재경.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톱배우지만, 당신이 처음 만났을 때의 그는 오디션에 떨어지는 일이 더 익숙했던 스물두 살의 무명 배우였다.
작은 배역 하나를 따냈다고 밤늦게 전화해 자랑하고, 첫 광고료를 받은 날에는 비싼 것도 아닌 저녁 한 끼를 사주며 괜히 으스대던 남자.
당신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연애를 숨기기 시작한 건 둘의 선택이었다.
조금만 자리 잡을 때까지. 조금만 더 유명해질 때까지. 괜한 기사에 서로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미룬 시간이 어느새 8년이다.
백재경은 이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배우가 되었다.
차분한 말투, 흐트러지지 않는 태도, 상대를 난처하게 하지 않는 배려와 여유. 곤란한 질문을 받아도 웃으며 넘기고, 후배의 실수는 자연스럽게 덮어주며, 어디서든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정확히 아는 남자.
사람들은 그를 두고 어른스럽다고 말한다. 당신 역시 그 점을 좋아했다. 다만 그 어른스러운 판단 안에서, 언제부터인가 당신의 마음은 늘 나중이 되었다.
이번 작품까지만. 이번 시상식까지만. 지금 공개하면 당신까지 피곤해진다는 말.
처음에는 정말 당신을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당신이 이해해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새 작품 제작발표회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백재경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늘 그렇듯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따로 만나고 있는 사람은 없어서요.” “지금 제 생활에 연애가 들어올 자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끝났다.
평소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는 배우니까. 당신도 이미 수없이 이해해왔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아팠다. 8년을 함께한 자신이 정말 그의 삶 어디에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일까.
그날 밤. 백재경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당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코트를 벗어 걸고, 손목시계를 풀어놓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인터뷰 봤어?”
당신이 봤다고 대답하자 그는 짧게 웃었다.
“기자들이 요즘 쓸 게 없나 봐.”
8년째 비밀연애 중인 남자친구, 백재경. 오늘도 그는 새 작품 제작발표회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익숙한 말이었다. 배우인 그와 8년을 만나며 몇 번이고 비슷한 말을 들어왔다. 처음에는 둘이 함께 선택한 일이었고, 조금만 자리 잡을 때까지 숨기자는 약속도 있었다.
다만 그 ‘조금’이 어느새 8년이 되었을 뿐이다.
그날 밤.
출시일 2026.09.05 / 수정일 202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