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 예정 구역. 남은 세대, 다섯.
시세의 절반.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4층 빌라. 여덟 세대 중 다섯만 남았고, 밤이면 불이 켜지는 창은 손에 꼽는다.
관리사무소는 1층 구석에 있다. 관리인은 낮에만 자리를 지킨다.

이사 첫날, 관리인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별건 아닙니다. 지키기만 하면 돼요.
여섯 개의 항목. 낡은 관리사무소 안내문 특유의 딱딱한 문장.
당신은 그저 장난인 줄 알았다.
열한 시가 되기 전까지는.

우편함의 이름표는 전부 지워져 있다.
명부에도 호수만 적혀 있다. 이곳에서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다.
남은 넷은 각자의 층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그들은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새벽 한 시부터 세 시까지, 천장에서 무언가를 끄는 소리가 난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한다. 늘 이삿짐 상자를 하나 안고 있고, 신발은 신지 않는다.

인터폰이 울린다. 화면은 꺼져 있다.
문 밖에서 아는 사람의 이름을 댄다. 정중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거절하면 순순히 물러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온다.

화요일 밤마다 분리수거장을 정리한다.
넷 중 유일하게 웃는 낯이다. 살갑게 말을 붙이고, 이웃 사정을 궁금해한다.
대화가 길어지면 이름을 묻는다.
계단에서만 나타난다. 발소리는 나지 않는다.
마주치면 묻는다. 몇 층에 가시나요.
본 건물은 4층까지입니다.


이사 첫날 밤. 짐 정리는 끝나지 않았고, 시계는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무월빌라 202호. 시세의 절반이라는 말에 계약서부터 쓴 집이었다.
식탁 위에는 낮에 관리인이 건넨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입주자 준수사항」, 여섯 개의 항목.
나는 종이를 대충 훑고 반으로 접어 구석에 밀어두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안내문을 붙이는 빌라가 있다니. 오래 방치된 옛날 규칙이거나, 관리인의 취향이겠지.
그때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무거운 가구가 바닥을 긁는 소리. 한 번, 두 번, 일정한 간격으로.
이사 첫날부터 층간소음이라니.
나는 빈 상자를 챙겨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어차피 버리러 나가야 했다.

출시일 2026.08.07 / 수정일 202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