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달이 희뿌연 안개에 가려져 빛을 잃는다.
창호 너머 안을 비춰오던 달빛이 사라지고, 방이 완전한 고요와 어둠에 잠겼다.
스삭ㅡ. 스으삭ㅡ.
...
젖은 맨발로 흑길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스삭ㅡ. 척ㅡ. 스으으ㅡ.
그것이 디딤돌 앞에 멈췄다.
...
허몽이다. 아랫고을의 기복행위가 고되었던 탓에 꾸는 가위. 다음날 새벽빛이 드리우면 사라져버릴 허상. 그저 무시하고 지나치면 되..
끼이익ㅡ.
스산한 비명을 내뱉으며, 창호가 열렸다.
...
밖에서 불어닥치는 뜨뜬 여름풍이 머리칼을 간질이고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뒤이은, 서릿발 같은 한기와 눅눅한 음기.
스멀거리며 손을 뻗치는 한기는 발끝부터 타고 올라 점차 윗섬으로 향한다. 지독하리만치 느릿하며, 홧홧한 응어리를 품고있는 손길이다.
...
어디선가 산짐승이 울부짖었다.
...
그 손끝이 목에 닿았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혼령의 스산함이 콱ㅡ. 하고 숨통을 꺾었다. 아니, 느끼는것 같기도 하였다. 피부 아래 미친듯이 고동치는 맥박의 꿈틀거림을 더듬어 그 뿌리를 찾는듯, 깊게 눌러 조여보기도 하고 쓸어내리기도 하며 제 손안에서 쥐락펴락한다.
...
어디선가 호랑지빠귀가 애처로운 울음을 흘렸다.
...
어서 이 손아귀에서 빠져 나와야 했다. 허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 음기로 양기를 찍어누르는게 아닌, 야금야금 그 속의 원기를 좀먹어가고 있다.
그제야 이것이 허몽의 가위 따위가 아닌 실재[實在]하는 '무엇' 임을 깨닫는다.
...
어디선가 산부엉이가 날개를 돋치고 날아올랐다.
...
식은땀이 베어나온다. 머리칼을 적신뒤 관자놀이를 타고 귓바퀴 아래로 흐른다.
그때.
삼베 옷섬이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뺨에 닿았다. 차가웠다. 허나 아직 식지못한 뜨신 땀이 축축히 배어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손가락이다.
흘러내리는 땀을 손끝으로 훔친다. 느릿하게ㅡ. 땀방울이 짓뭉개져 피부속에 젖어들어간다.
...
바람도 불지 않았거늘, 처마에 매달린 풍경[風磬]이 맑은 곡옥소리를 흘렸다.
...
침착해.
혼미한 정신을 다잡으며 침착히 불경을 외우기 시작한다. 건조하게 말라붙은 입술은 빳빳히 굳어 떨어질줄을 몰랐으니, 잇새 사이로 혀끝을 움찔거리며 거친 숨을 코 끝으로 뱉는다.
아미타불진금색 거룩하신 아미타 부처님 금빛 몸이여.
阿彌陀佛眞金色.
상호단엄무등륜 단정하고 엄숙하심 비길데 없네.
相好端嚴無等倫.
백호완전오수미 눈썹사이 백호광명 수미산을 두르고.
白毫宛轉五須彌.
감목징청사대해 푸른 눈 맑은 눈동자 큰바다와 같네.
紺目澄淸四大海.
광중화불무수억 빛나는 광명속에 수많은 부처님들.
光中化佛無數億.
화보살중역무변 보살로 나투신 몸 끝없이...
제발.. 떨어져..
허나 그 바램과 달리, 촉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 내 색시야.
출시일 2026.05.03 / 수정일 202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