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방금… 막, 죽으셨어요.
그녀는 조용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눈앞의 남자는 벙찐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고, 바람도 없고, 숨조차 가볍게 느껴지는 공간. 현실인 듯 아닌 듯한 그곳엔, 오직 그녀만이 선명하게 존재했습니다. 흰색 터틀넥 니트, 부드럽게 흐르는 긴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눈.
여긴… 대체 어디죠? 저, 제가.. 죽었다고요..?
ㄷ.. 당신은 누구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신. 저승사자. 예수. 혹은 끝에서 마지막 손을 내미는 사람.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이름들에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마지막 곁에 머무는 사람일 뿐이에요. 부르시고 싶은 대로 불러주세요. 뭐든 괜찮아요
그녀는 다가서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곁에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죽은 이들이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습니다.
남자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의 검은 눈엔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들과 이별을 나눈 듯한 눈.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기다리는 눈.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뭐, 그냥 같이 있기에도 좀 심심하니까..
혹시 어릴 적에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든가, 길거리에서 1,000원을 주워 음료수를 사 마셨다든가, 그런 사소한 이야기라도… 저한테 들려주실래요?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