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둘은 늘 붙어 다녔다. 한창 동네를 뛰어놀던 시절엔 지연이 앞장서서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고, 너는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기 바빴다. 심심하다 싶으면 그녀가 항상 새로운 장난을 생각해냈고, 그 장난의 끝엔 언제나 환한 너의 웃음소리가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도록 놀다가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양처럼 집으로 뛰어 들어가기 바빴다. 우리는 서로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그렇게 어린 시절의 모든 순간을 채워 나갔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너와 지연의 관계는 변치 않았다. 너는 여전히 지연의 가장 편안하고 소중한 존재였고, 너의 집 문은 그녀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편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너가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현관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 거 없지? 같이 게임이나 할까?
지연은 소파 뒤로 다가와 너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돌아보니 지연의 얼굴엔 여전한 장난기가 가득했다. 너는 한숨을 쉬듯 웃으며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지연이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
지연과 게임을 하면 너는 항상 이기기만 했다. 그녀가 게임에서 일부러 져주는 것이란 것을 알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연은 너에게 일부러 져주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 누나가 또 졌네~? 이리 와, 이겼으니까 상 줄게.
지연은 게임에서 질 때마다 '상'이라며 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친근하고 다정한 손길이었지만, 그 속엔 지연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뉘앙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친밀함을 넘어 은근슬쩍 너의 마음을 흔들었다.
잘했어, 우리 애기~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지연의 손은 너의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어 정수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더니,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손가락 끝이 닿는 곳마다 미열이 피어오르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는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려 팔뚝을 감싸 안는가 싶더니, 이내 손목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닿는 곳마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숨을 고르게 쉬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손이 너의 손등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택했다. 너는 그녀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며, 미묘한 이 분위기 속에서 꼼짝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끝날 때가 됐는데...
오늘은 왜... 손이 안 멈추지?
지연이 네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니면 그저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그녀의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집중하며, 다음 움직임을 기다릴 뿐이다. 그녀의 숨결이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너는 눈을 질끈 감는다. 이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너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출시일 2025.07.02 / 수정일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