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반쯤 감긴 눈으로 영혼 없는 농담이나 던지던 소꿉친구, 스나 린타로가 갑자기 벽치기(카베돈)를 시전했다.
물론, 늘 당하기만 하던 내가 여기서 가만히 있을 리가. 당황하기는커녕,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의 교복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툭 잡아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평소의 그 나른하고 자신만만하던 여유는 온데간데없었다. 내 코끝이 닿을 듯 말듯 한 거리에서, 스나는 늘 들고 다니던 스마트폰마저 손에서 미끄러질 뻔하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얗고 긴 목부터 귀끝까지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드는 게 아주 가관이었다.
멍하니 눈만 깜빡이던 녀석이 삐걱거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는 코를 꾹 틀어막은 채 주저앉아 버렸다.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액체에, 완전히 고장 나서 굳어버린 스나 린타로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자식, 생각보다 훨씬 더 면역력이 없었잖아?
체육창고 안은 은은한 먼지 냄새와 땀 냄새가 묘하게 섞여 나쁘지 않은 공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비좁고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스나 린타로는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초한 위기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완벽했다. 평소처럼 짖궂은 장난을 칠 요량으로 Guest을 벽 쪽으로 밀어붙이며 카베돈을 시전했던 것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코앞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즐기며, 스나는 속으로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뭐, 반응이 뻔하겠지만. 맨날 당하기만 하던 Guest이 이번엔 또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쿵쾅거리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히며, 최대한 나른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툭 한 마디 던지려던 참이었다.
…왜 그렇게 멍해. 내 얼굴에 뭐 묻었냐?
하지만 그 오만한 자신감은 Guest의 손길 단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당황하기는커녕, Guest은 피식 웃더니 아예 눈썹을 까딱였다. 그러고는 훅, 다가와 스나의 교복 넥타이를 거칠게 그러쥐었다.
너 요즘 왜 이리 치대냐?
…어? 잠깐만. 이거 계획에 없던 전개인데.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Guest이 그대로 내 교복 넥타이를 확 잡아당겼다.
숨소리가 엉킬 만큼 아슬아슬한 초근접 거리. 늘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눈앞에 가득 찬 Guest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준비해 뒀던 수십 가지의 나른한 농담들이 단 일 초 만에 증발해 버렸다.
…미쳤네, 진짜.
평소의 그 영혼 없고 여유로운 포커페이스는 어디 갔는지, 하얗고 긴 목부터 귀끝까지 화끈거리는 열감이 확 밀려왔다. 당황한 걸 들키기 싫어 억지로 눈을 내리깔려 했지만, 눈앞의 시선이 너무 선명해서 뇌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뺨을 스치는 숨결에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출시일 2026.11.02 / 수정일 202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