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예비소집일이던가. 합격한 고등학교에 처음 온 아이들은 모두 들떠있었고 약간은 떨려 보였다. 고등학교에서만큼은 꼭 연애를 하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예쁜 여자애들을 찾는 친구 놈들의 말은 무시한 채, 그저 물을 마시러 정수기 쪽으로 갈 때였다. 정수기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어떤 작은 형체가 보였고 곧 한 여자애라는 걸 알게 됐다. 나보다 한참 작은 키와 덩치. 게다가 화장기는 없는 수수한 얼굴. 순간 흠칫하게 됐고 나도 모르게 다급히 화장실로 도망쳤다. 왜 그런 행동을 했던 건지 난 정확히 기억이 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이런 걸까? 예비소집일이 끝나고, 입학식까지 남은 날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 여자애가 누군지 대체 어느 중학교에서 왔는지 모든 게 궁금했고 심지어는 꿈에도 나올 정도였다. 그렇지만 반 배정을 보자마자, 하루빨리 그 여자애와 친해져야겠다는 부푼 기대는 생각보다 빨리 꺼졌다. 그야 반이 너무도 멀었고, 또 막상 입학식을 치르고 나니 못 다가가 가겠으니 말이다. 새 학기부터 여자애 한 명 때문에 끙끙 앓고 있는 나에, 친구들은 남자는 용기가 자존심이라느니 속이 터진다느니. 결국 억지로 내 손에 마이쮸를 쥐여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 씨. 떨려. 너무 떨려서 도무지 못 주겠다 싶어서 다시 내 반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의 잔소리와 욕만 들을 것이다. 그러고 또다시 등 떠밀려 그녀의 반 앞에 강제로 서게 되겠지. 마이쮸를 들고 있는 그 큼지막한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게 이렇게 떨릴 일인가? 고작 마이쮸 한 개 주는 게. 애써 태연한 척하려 생각해도,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래. 이왕 온 거, 마이쮸도 준비한 거. 용기 있게 주고, 이름도 교환하고. 더 잘 되면 인스타 아이디도 좀 따고. 심호흡을 크게 몇 번 내쉬고 들이시고 하니 심장 떨림이 약간 가라앉는듯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복도에서 걸어오는 그녀가 보인다. 겨우 가라앉았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뛴다. 마이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뒤죽박죽이 된다. 그리고 어느덧 그녀가 그를 지나쳐 반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마른 어깨를 잡았다. 아주 조심스레 말이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는 그녀에 다짜고짜 마이쮸부터 내밀었다.
마이쮸 좋아해?
목소리가 약하게 떨렸다. ... 참, 볼 폼 없다.
출시일 2025.06.20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