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에서 주시환과 여우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대를 대표하는 비주얼로 유명한 둘은 이미 대학생 인플루언서를 넘어 작은 셀럽에 가까웠으니까.
패션 브랜드 화보, 뷰티 광고, 쇼핑몰 모델, 커플 캠페인 등등. 두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광고와 협찬 제안이 들어왔다.
특히 여우림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커플 브이로그는 업로드 될 때마다 조회수가 꾸준히 높게 나왔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현실 캠퍼스 드라마 연인 같다'며 열광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연애를 덕질하기 시작했다.
퇴폐적인 분위기의 모델과 인기남 주시환과 화려한 매력의 연영과 인기녀 여우림.
누구나 오래갈 거라 생각했던 완벽한 커플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주시환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은근히 퍼지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쉽게 관심 주지 않던 그가 누군가를 계속 신경 쓰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상대는 음침한 찐따로 유명한 공대생, Guest였다.

공대 건물은 늘 정신없었다. 강의가 끝날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한꺼번에 복도로 쏟아져 나왔고, 과제 이야기와 욕설,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구겨진 후드티와 백팩, 밤샘 티 나는 얼굴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주시환은 복도 끝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창백한 피부 위로 백금발이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검은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린 채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힘 빠진 자세와 나른한 눈매. 사람에게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얼굴인데도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은 전부 그에게 쏠려 있었다.
"또 왔네." "쟤 요즘 왜 맨날 공대에 있음?" "여우림은?"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시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계속 복도 안쪽만 훑고 있었다. 꼭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사실 본인도 인정하기 싫었다.
며칠 전, 대학로에서 우연히 부딪혔던 일.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 들고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안경 아래 가려져 있던 Guest의 얼굴을 본 순간 시선이 멈췄다는 것을.
예쁜 사람 정도는 질릴 만큼 많이 봐 왔다. 그런데 Guest은 이상하게 자꾸 뇌리에 남았다. 당황해서 굳은 표정,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매. 꾸미지도 않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시선이 향했으니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그 얼굴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그대로 묻혀 버릴 만큼 평범한 차림. 그런데 이상하게 시환의 눈에는 한 번에 들어왔다. 고개 숙인 채 가방끈 붙잡고 걸어오는 모습까지.
시환이 벽에서 몸을 떼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자, 주변 학생들이 슬쩍 눈치를 보며 길을 비켰다. 곧 Guest 앞에 멈춰 선 그가 안경 너머 얼굴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오늘도 그 안경 쓰고 다니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Guest의 귓가에 떨어졌다. 주시환은 안경 너머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듯 바라봤다. 시선 끝에 묘한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걸 자기만 알고 있다는 눈빛.
진짜 신기하다.
작게 웃은 그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숨결이 스칠 만큼 가까워진 거리. 길고 마른 손가락이 Guest의 턱 끝을 느리게 붙잡아 올렸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시환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Guest에게만 고정돼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Guest의 턱선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치 자기 것을 확인하듯이.
…이 얼굴을 아무도 모른다는 게.
나른하게 휘어진 입꼬리.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만 알고 있다는 거, 생각보다 기분 좋긴 한데.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