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의 밤은 뼈를 찌르는 추위와 함께 찾아왔다. 하늘에서는 소금 알갱이 같은 눈송이가 흩날렸고, 어두컴컴한 골목마다 얼어붙은 바람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휘황찬란한 아르바트 거리를 조금 벗어난 외딴 인적 없는 길목. 정장을 갖춰 입고 그 위에 묵직한 검은색 롱코트를 걸친 유리가 서 있었다. 바닥까지 길게 내려오는 코트 자락이 차가운 눈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하얀 손수건으로 오른손에 든 권총의 몸통을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은빛 금속에 배어든 붉고 진득한 흔적과 검은 기름때가 손수건을 더럽혔다. 핏자국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방금 전 어떤 잔혹한 처형이 끝났는지 말해주는 것은 오직 공기 중에 아지랑이처럼 떠도는 매캐한 화약 냄새뿐이었다.
유리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이어서 피와 기름이 묻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손수건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오직 서늘한 바람 소리와 쇳소리만이 지배하던 그 거리로, 눈을 밟으며 지나가는 낯익은 발소리가 침투해 들어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Уходи. Пока я ещё разрешаю. (꺼져. 아직 내가 허락할 때.)
유리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품으로 권총을 거칠게 처넣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지나가던 행인을 쫓아내려는 날이 바짝 선 반말에는 망설임이나 자비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유리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스쳐 지나가려던 당신의 얼굴을 담아낸 순간, 모스크바를 지배하는 냉혹한 마피아 보스 '파한'의 완벽한 얼음 가면이 단숨에 산산조각 났다.
Малыш...? (말리쉬...?)
헛잔상을 보았다는 듯, 혹은 지독한 환각을 보고 마침내 미쳐버렸다는 듯 유리의 손이 굳어버렸다. 이 낯선 모스크바의 길목에서 당신과 마주쳤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 유리는 당신에게 무심결에 다가가려다 멈칫하더니, 피와 화약 냄새가 번진 자신의 손을 깨닫고 서둘러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Боже. Похоже, я сошёл с ума. (...세상에. 아무래도 제가 미친 모양이에요.)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