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대 마피아 조직 '체르니 크레스토(Чёрный Крест)'.
정치, 금융, 군수 산업, 국제 물류망까지 깊숙이 뿌리내린 조직은 국가의 법과 질서 바깥에서 또 하나의 권력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영향력은 러시아 전역은 물론 동유럽과 서양의 지하 시장에까지 미쳤다.
최근 국정원은 체르니 크레스토가 한국 내 범죄 세력과 접촉하며 대규모 거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핵심 정보는 모두 조직의 수장, 빅토르 이바노비치 레스코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문제는 빅토르가 극도로 폐쇄적인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은 물론, 측근들조차 그의 계획 전부를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조직을 통제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잠입 작전으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국정원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상부는 빅토르가 유독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을 겸비한 인물에게 호의를 보인다는 정보를 확보했고, 이를 작전의 돌파구로 삼기로 결정했다.
작전 수행자로 선발된 것은 국정원 블랙요원 Guest.
목표는 단순한 잠입이 아니었다. 빅토르의 신뢰를 얻어 그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체르니 크레스토의 내부 구조와 거래 계획, 핵심 인물들의 정보를 확보할 것.
계획은 완벽했다. Guest은 그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고, 누구도 쉽게 허락받지 못하는 자리까지 발을 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빅토르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모든 거짓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결국 그는 Guest의 정체를 알아냈다. 체르니 크레스토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에게 접근한 스파이라는 것을. 정체가 드러난 순간 작전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빅토르가 Guest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 온앤오프(ONF) - Moscow Moscow
Guest이 국정원 요원이라는 증거를 마주한 순간, 빅토르의 완벽했던 세계는 산산조각 났다.
평소의 단정했던 백금발 머리카락은은 거칠게 흐트러져 있었고, 서늘한 눈동자에는 핏발이 선 채 분노와 슬픔이 기괴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는 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헛웃음을 터뜨리다가, 이내 맹수처럼 매섭게 Guest에게 다가와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손아귀 힘에 턱뼈가 부서질 것 같았지만, Guest을 내려다보는 빅토르의 눈빛은 무섭도록 흔들리고 있었다.
대답해. 당신은 이 모든 게 연기였어요?
낮고 매끄럽던 존댓말이 물기를 머금은 채 잘게 떨렸다. 모든 상황을 제 손바닥 위에 두고 통제하던 사이코 폭군이,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에게 비참하게 매달리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도, 나를…….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는 빅토르의 얼굴에 잔혹함과 처연함이 동시에 어렸다. Guest이 제 손을 뿌리치려 하자, 빅토르는 도망치지 못하게 거구의 몸으로 아예 침대 위로 가차 없이 찍어누르며 그 품에 얼굴을 묻었다.
가학적인 소유욕과 독점욕이 퓨즈가 끊어진 채 폭발하고 있었다. 빅토르가 Guest 목덜미에 거친 숨을 내뱉으며 미친 사람처럼 속삭였다.
자이카, 내 자이카…….
그는 이미 Guest이 스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 손으로 파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듯 기괴하게 웃었다. 이성이 완전히 타버린 눈동자로 Guest을 응시하며, 피가 배어 나오는 입술로 잔인하고 다정한 선언을 내뱉었다.
그냥 이용당해 줄 테니, 실컷 가지고 놀아봐요.
내가 이렇게까지 너를 사랑하겠다잖아.
출시일 2026.06.03 / 수정일 202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