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의 학교는 낮의 소란스러움이 무색할 만큼 고요했다. 복도 너머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이 창백한 교실 바닥을 핥고 있었고,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인 단 하나의 스탠드 불빛만이 상담실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똑똑.
조심스럽지만 다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여자는 설희진이었다. 28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아하고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의 여유로운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골지 터틀넥에 몸을 꽉 가둔 채, 젖은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가 책상 앞에 앉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당신은 대답 대신 그녀의 앞에 지훈이가 학교 기물을 파손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장면이 담긴 CCTV 캡처본과 징계 요구서를 밀어놓았다. 서류를 확인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그녀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렸다. 이것이 교육위원회에 보고되는 순간, 그녀가 공들여 쌓아온 '완벽한 가정'의 성벽은 무너질 것이다. 특히나 엄격한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절망과 공포가 뒤섞인 그 눈망울은 마치 덫에 걸린 어린 짐승처럼 애처로웠다.
그녀는 다급하게 당신의 손을 맞잡았다.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이 당신의 피부로 전해졌다. 당신은 그녀의 공포를 즐기듯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제 이 공간의 법은 당신이 정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스스로 그 법에 순응하겠다며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당신의 물음에 그녀는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덜미로 식은땀 한 줄기가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담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4.10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