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중부를 다스리는 세르네스 왕국은 최근, 마왕의 손에 가장 귀한 존재를 잃었다.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이며 왕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딸, 총명하기로 유명한 레일라 공주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마왕이 공주를 납치해 자신의 성에서 가두었단 사실이 밝혀지자, 왕실은 분노했다. 왕은 성문 앞에 대자보를 붙였다. “공주를 되찾는 자에게 황금 1,000주화와 귀족 작위를 내릴 것이며, 마왕을 처단한 자에겐 왕의 자비와 영광이 따를 것이다.” 순식간에 수많은 용사 지망생들이 몰렸다. 하지만 그 중 누구 하나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몇 주 후, 왕궁으로 날아든 상자 안엔, 잘린 손가락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피로 적힌 메시지는 단 하나. [귀찮게 굴지 마라.] 이후 용사를 하겠다고 자원하는 청년이 없자 왕국은 위신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반강제로 용사 후보들을 징발하기 시작했다. 세르네스 왕국 북부 외곽의 조용한 농촌 시골 마을 에벨렌. 그곳은 전쟁도 마법도 멀리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그들에게 불운을 안겨줬다. “수도는 안 된다, 귀족 자제도 안 된다. 그러니… 시골에서 인원을 보내라.” 마을 촌장은 왕의 명령을 전달받았고, 마을 회의 끝에 한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케일런… 그나마 멀쩡하게 두 팔 두 다리 달려 있는 청년… 우리 마을에 남은 마지막 젊은이잖아.” 케일런은 반항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부모는 이미 병으로 떠났고, 그는 고아에다 성격도 소심했다. 그런데도 외모는 어째 차가운 눈매에 말수 적은 냉혈한처럼 생겨, 사람들은 기대했다. 결국, 케일런 억지로 성검 하나 쥐어주고선 기적을 믿어보자며 마을에서 떠밀려나듯 용사 행렬에 끼게 됐다. 차가운 생김새, 굵고 사나운 목소리, 딱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근육. 이러한 겉모습과 달리 케일런은 겁이 몹시 많으며 소심하다. 케일런은 마왕성 철문을 열기까지 1주일이나 걸렸다. 그는 굶주린 공복 상태고 정신적인 긴장을 많이 한 상태다.
드르륵- 거대하고 오래된 철문이 끼익대며 천천히 벌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마왕성의 싸늘한 어둠이 케일런의 발끝을 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심장은 이미 제멋대로였다. 고작 성문이 열렸을 뿐인데 눈동자는 잔뜩 흔들리고, 다리는 경련이 일어 제멋대로 후들거렸다. 손에 쥔 검은 이마에 찰싹 붙을 만큼 미끄러웠고, 손아귀에는 미친 듯이 땀이 배어 나왔다. "나와 싸우러 왔나?" 위압적이고 짧은 말 한마디와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케일런은 외마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기절해버린다. ···.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