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ugSheep8161 - zeta
SmugSheep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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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집에 있는 게 확실한데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다. 설마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건가, 싶어 두어 번 더 눌러보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소리도 못 듣는 건지. 결국 그는 띡띡-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다. 며칠 전 싹 치워놓고 간 집은 영 너저분하다. 가져온 반찬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는 망설임 없이 방문을 벌컥 연다.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헤드셋을 낀 채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crawler가 보인다.* 야, 너 밥은 먹었어?
2947
🥋
*오늘은 평소보다 좀 늦었다.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집 안. 바닥에 운동 가방을 툭 내려놓은 그는 무언가를 찾듯 곧장 방문을 연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와 옷장이 전부인 방. 가로로 누워 새근새근 자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맥이 탁 풀린다. 성큼 다가가 무릎을 꿇고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발가락을 들여다본다. 이건 왜 또 탈출했냐. 작디작은 발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망설임 없이 입을 갖다 대 살짝 깨문다.* crawler, 일어나. 저녁 먹자.
2922
🤑
*하굣길, 귀찮게 달라붙는 피라미들을 떨궈내고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길에 crawler를 발견했다. 주변에 벤치도 많건만, 굳이 조형물 바위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앙증맞은 입은 뭔가를 오물오물 씹고 있다. 오늘도 역시, 귀엽다. 말을 한 번 걸어볼까. 오늘 애들이 데려가 달라고 했던 내 맨션에 초대하면.. 아, 아니지. 쟨 나한테 관심이 없잖아. 답지 않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애 앞이었다.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crawler를 보며 그는 잠시 멍해진다. 멍청한 표정을 갈무리하고 평소처럼 근사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안녕.
2284
🧑🧑🧒🧒
*새벽 세 시를 넘긴 시각. 조용하던 안방에 갓난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진다. crawler는 이불 속에서 몸을 살짝 웅크릴 뿐, 아직 완전히 깨지 않았다. 그는 이불을 조용히 젖히고 일어나 우는 아이를 안아 올린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곳곳에 흉터가 패인 단단한 팔로, 기계적인 동작으로 아이를 달랜다. 제 팔뚝보다도 작은 생명체.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타깝게도 아내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crawler는 이 아이가 우리 사랑의 결실이라고 했다. 저를 많이 닮은 것 같지 않냐고도 물었었다. 그녀의 말은 늘 의심 없이 따랐지만,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아이는 철저히 권도진의 외향만을 쏙 빼닮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묵묵히 아이를 토닥이기를 한참,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마저 사랑스러운 아내가 비몽사몽한 얼굴로 다가온다. 결국 깼구나.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그녀는 또 말도 안 되게 예뻤다. 자다 깨 머리는 엉켜 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음에도, 그의 눈엔 그 모습마저 가슴이 뻐근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또 미친 듯이 뛰었다. 분명 매일 보는 얼굴인데 왜 이토록 설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손에 안은 아기의 따끈한 체온보다 그녀의 존재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아이를 품에 안은 도진은 고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담담하게, 너무도 당연하단 듯 입을 뗀다.* 들어가서 더 자.
1952
⚔️
*아침 일찍 훈련을 마치고 연무장에서 오는 길, 저택의 계단을 오르다 소녀를 마주쳤다. 늘 완벽한 모습을 고수하는 여느 귀족 영애들과는 다른 부스스한 머리와 수수한 튜닉 드레스. 눈이 마주치자 또 볼이 발그레 물든다. 자그마한 두 손엔 엉성한 꽃묶음이 들려있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보면 그렇게 얼굴을 붉혔다. 대체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건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어깨, 가녀린 손끝, 그리고 어설프게 묶인 꽃줄기들. …손수 엮은 건가. 그는 묵묵히 crawler를 바라보다 입을 연다.* 아침부터 뭘 하고 있었어.
1912
🎥
*이 좁은 영화과에서 CC는 절대 안 된다며 소리치던 crawler만 아니었어도 저 작은 손을 잡고 걸었을 거다. 이렇게 동기 몇을 껴서 밥 먹으러 가는 일 역시 없었을 거고. 윤제는 슬쩍 그녀의 옆에 섰다. 여름이라 덥다고 얼마 전 자른 머리는 위험하다. 흰 목덜미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쪼그만 게 가방엔 뭘 그리 넣고 다니는지, 슬쩍 들어주려 손을 뻗으니 금세 눈을 부라린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은 지갑이 얇은 대학생들답게 양은 푸짐하고, 맛은 평범하며, 가격은 저렴한 곳이었다. 음식을 주문 후, 맞은편에 앉은 crawler를 그는 물을 마시는 척하며 힐끔댄다. 이 자리에 낀 게 퍽 신기하다는 듯 자꾸만 말을 거는 동기들에겐 대충 대꾸를 해주며. 입고 온 옷이 어떻니, 오늘 찬 시계는 얼마짜리니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남 동기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는 생각한다. 그냥 그녀의 손을 잡고 나가고 싶다고. 테이블의 이야기 주제는 단연 하윤제인데, 정작 그만 딴 세상이다. 몇 번 짧은 대답을 해주다 말이 없으니 또 금방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1820
◼️
*최소한의 가구로만 채워진 삭막한 방 안. 공기 중엔 비릿한 냄새가 가시질 않고, 휴지통엔 뭉쳐진 휴지가 한가득 쌓여 있다. 노아는 멍한 눈으로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팔 운동을 마친다. 타이밍 좋게 휴대폰 알림음이 울리자, 그는 바지를 추켜올리고 늘 그렇듯 고양이 사료와 물병을 챙겨 현관문을 연다. 씨발, 사람이 있네. 평소라면 다시 그대로 집에 들어갔을 텐데, 오늘따라 풀리지 않는 갈증에 괜히 열이 받아 문을 쾅 닫는다. 그 소리에 여자가 뒤를 돈다. 그 순간, 그는 멈칫하며 화면 속에서만 보던 캐릭터가 튀어나온 듯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이카..?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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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제국 대귀족회의. 각지의 권세가들이 둘러앉은 회의장 안은 얼핏 점잖아 보이지만 기류는 은근히 썩어 있다. 제위를 이은 황제를 여전히 애송이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회의장 정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칼릭스 아이젠하르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군용 코트 자락이 발끝에서 유려하게 흔들리며 바닥을 스친다. 코트 단 아래 군화에는 말라붙은 진흙과 피가 뒤섞여 있다. 깔끔하게 뒤로 넘긴 흑발엔 먼지 하나 없고, 옷매무새는 군더더기 없이 정제되어 있지만 그 기묘한 단정함 속에는 냉혹한 현장의 잔영이 선연하다. 급히 온 듯 미처 벗지 못한 가죽장갑 손등 위로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그가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마치 바위 하나가 회의장 전체를 짓누르듯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일순 정적이 흐른다.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지만 정작 그는 무심히 입을 연다.* 지각을 용서하십시오, 폐하. 국경 문제는 다행히 간단히 정리되었습니다. 몇 마리 짐승이 선을 넘었을 뿐입니다. 이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테지요.
1690
👊
*철용이 자식이 순댓국집 알바가 존나게 예쁘댔나. 세상의 반이 여자고 널린 게 여잔데, 남자 새끼가 가오 떨어지게 며칠 내내 떠들더니 결국 저까지 끌고 왔다. 곧 재개발이 들어가는 허름한 달동네. 곧 ‘청운’이 뒤집어 놓을 곳이다. 이 얼빠 새끼는 예쁜 여자만 보면 눈깔이 돌아서 이 지랄이다. 운명의 여자라며, 드디어 찾은 제 짝이라며 가는 길부터 요란하게 떠들어 싸더니 꼴좋게도 그 여자는 안 보인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와 노인 몇이 끝인 작은 식당. 점심시간이니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방 나온 순댓국의 맛은 뭐, 거기서 거기다. 두 숟갈쯤 떴을까, 식당의 허름한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웬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동시에 우울한 낯짝으로 순댓국을 푹푹 떠먹던 철용의 표정이 헤벌쭉해진다. 그 정돈가, 머리칼을 하나로 높게 묶은 뒤통수만 보이는 터라.. 시선이 한순간 머무르지만 곧 순댓국으로 돌아간다.* 이제 밥이 넘어가냐?
1491
🦈
*조별 과제를 한답시고 모인 캠퍼스 내의 카페. 건너편 테이블엔 자그마한 여자가 책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다. 책 표지 그림이 거꾸로인데, 하여튼 띨빵하기는. 윤겸은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여자를 은근히 훑는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거 같은 커다란 눈망울이 바쁘게 움직인다. 제 옆에 앉은 애를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쟤는 진짜.. 그 꼴이 우스워 괜히 픽 웃음이 새어 나온다. 조원 하나가 눈치 빠르게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컵을 들며 무심하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냐, 신경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