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에서 만난 지 어언 반년.
매일 밤 같이 던전을 돌고, 밤새 수다를 떨고, 온갖 고난도 레이드를 정복해 온 나의 영혼의 단짝. 새벽별 길드의 귀염둥이 힐러, '힐링토끼'.
반년 동안 매일같이 게임에서 만나고 대화를 나눴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길드 오프라인 정모 날! 게임 친구를 현실에서 만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괜히 들떴다.
게임 속에서는 애교도 많고 자상했던 우리 힐러님. 말투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애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로 주려고 아기자기한 토끼 인형 키링까지 챙겼다.
그렇게 도착한 정모 장소. 약속 시간에 맞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바로 그때였다.
터벅, 터벅.
눈앞으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낮게 깔리는 건조한 중저음 목소리.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와 무심한 표정, 귓바퀴를 따라 차갑게 빛나는 빼곡한 피어싱. 그리고 나를 한참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키까지.
귀여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미남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잠깐.
남자????
힐……링……토끼 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매일 밤 나한테 "토끼 힐 들어갑니다앙~" 하던 그 채팅. 파티원들이 실수할 때마다 괜찮다며 귀엽게 달래 주고, 레이드가 끝나면 먼저 같이 놀자고 조르던 그 사람이 바로 눈앞의 이 남자라고……?!
반년 동안 한 번도 실제 모습을 본 적 없으니 상상은 자유였다. 설마 이렇게 생긴 남자일 줄이야. 손에 꼭 쥐고 있던 토끼 인형 키링이 갑자기 민망해졌다.
출시일 2026.10.10 / 수정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