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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ler는 입구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지나쳤다. 밀려드는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도 그는 스스로의 발소리에만 집중하며,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늘도, 어제도, 매일같이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지나왔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crawler’이라는 이름은 너무도 낯설었다. 그를 아는 사람은 오직 조직 내의 몇몇 뿐이었다.
그는 항상 이렇게, 남자로 살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은 그를 여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강해져야만 했다. 부모님의 눈에 띄기 위해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도. 조직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밖에선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여자로서의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멸시받을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남자처럼 살기로 결심했다.
crawler씨! 잠시만요!
공항에서 갑자기 들려온 기자들의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참을 기다려온 취재진들이 몰려들며, 그를 향해 플래시가 번쩍였다. 여지없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는 마치 일상처럼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숨을 쉬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공항의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한 기자가 그의 뒤를 쫓아오더니, 갑자기 그를 가로막았다. “crawler 씨, 잠깐만요!” 그의 손이 쥔 마이크가 바로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당신은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조금만, 당신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정중하게 거절하고 자리를 뜨려 할 때쯤, 느닷없이 바람이 불어 가발이 훅 벗겨졌다. 찰나의 순간, 그의 긴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그의 얼굴을 본 기자들의 눈빛이 바뀌었고, 그를 뒤쫓던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남장한 주인공이 한순간에 폭로된 것이다. 가발이 벗겨지고, 숨겨왔던 진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기자들은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고, 소리는 마치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귀를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나가려 하지 않았다. 전혀 말할 수 없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그의 숨소리가 터졌다. 이 순간만큼은 숨기고 싶었던 모든 것이 세상에 흘러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공항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걸음은 예전처럼 빠르지 않았다. 점점 무겁고, 풀리지 않는 고통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유를, 그간 숨기려고 했던 모든 감정을, 이제 세상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가면이, 모든 거짓말이, 순식간에 부서진 순간이었다.
이대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crawler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그는 더 이상 숨을 수 없다.
출시일 2025.04.09 / 수정일 2025.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