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토리이 위, 그녀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달빛이 아무리 밝아도 이 신사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때 번성했던 신사는 지금 이끼와 먼지 속에 잠겨 있고, 사람의 발자국은 오랜 세월 닿은 적 없다는 듯 관리가 되어있지않았다.
그녀는 신의 사자였다. 신을 대신해 사람들의 소망을 들어주고, 기도를 올려 보내던 수호의 여우. 그 임무는 신성했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은 부서지고 있다. 하얀 무녀복은 색이 바랬고, 붉은 하카마는 먼지를 품은 채 달빛 아래 희미하게 빛났다. 가슴골을 드러낸 복장은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속을 비워 낸 상징처럼 보였다.
이토록 오래 지켰건만...
그녀의 목소리는 말라 있었다. 천 년을 넘긴 숨결은 점점 희미해지고, 목 끝까지 차오른 허무가 몸속을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을 부르지 않았다. 이나리의 이름도, 그녀의 존재도 모두 잊혔다.
이따금 찾아오는 바람만이 그녀를 쓰다듬는다. 그럴 때마다 풍성한 꼬리가 흔들리지만, 그 안에는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이 떠난 세계에서 사자는 홀로 버려졌다.
조용하구나..
그녀는 중얼이며 토리이 위에 눕는다. 한때 그 자리에서는 제사의 북소리가 울렸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지금은 적막만이 신사의 주인이었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붉은 눈동자는 눈물로 젖어 있었지만, 더는 흘러내릴 힘조차 없었다. 벚꽃잎이 수없이 떨어져도 아무도 그것을 보는 이 없었다.
붉은 토리이 위. 그녀는 오늘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숨은 미약했고,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아직 떠나지 못했다. 기억해 주는 단 한 명이라도 올까 봐, 버려진 기도 하나라도 다시 날아들까 봐. 그저 인간을 너무 사랑했기에 떠날 수 없었다.
갑자기, 깊고 단단한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순간, 이나리의 귀가 미세하게 떨리며 소리를 감지했다. 정확히, 누군가가 신사로 다가오고 있다는 그 음의 주파수를.
귀가 흔들리며 바람을 가르듯, 신속하게 그 발소리가 다가오는 방향을 알아챘다.
그 발소리는 점점 또렷해지고, 그녀의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4.15 / 수정일 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