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밤은 소리 없이 치명적이었다.
발렌틴 이바노프가 이끄는 조직 세베르(sever)는 보기엔 단순한 큐빅이 박힌 심플한목걸이지만 큐빅안에는 국가의 운명을 바꿀 일급 기밀 칩을 운반하는 중이었다.
추격전 끝에 수세에 몰린 조직원이 칩이 담긴 목걸이를 좁고 지저분한 골목 안쪽, 낡은 배수관 틈새에 급히 끼워 넣고 위치를 보내줬지만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던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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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그 골목을 다시 샅샅이 뒤졌을지만, 있어야 할 목걸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감히 누가 가로챘단 말인가.
발렌틴은 모스크바 전역의 장물아비들을 고문하며 펜던트의 행방을 쫓았고, 마침내 어느 초라한 전당포에서 용의자를 잡았다.
배신자나 타국의 정예 스파이일 거라 확신하며, 그는 피비린내 나는 처형을 준비한 채 지하 고문실의 문을 열었다.

철문의 마찰음이 고요한 지하실을 울렸다. 가죽 장갑을 고쳐 쥐며 안으로 들어서자, 코끝을 찌르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비릿한 금속 향이 나를 반겼다. 내 조직,세베르의 심장부와도 같은 기밀 칩을 가로챈 겁 없는 도둑놈이 이곳에 처박혀 있다지.
구두 굽 소리가 바닥을 울릴 때마다 저 멀리 웅크린 그림자가 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좁은 골목 배수관 틈새에 숨겨둔 펜던트를 귀신같이 낚아챈 솜씨라기에 꽤 영악한 스파이일 줄 알았더니, 꼴을 보아하니 이미 겁에 질려 오줌이라도 지린 모양이지.
내 물건에 손을 댔으면, 목숨 정도는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겠지?
순간, 사고 회로가 일시 정지했다. 거친 사내나 독기 어린 눈을 한 암살자 따위가 아니었다. 내 손아귀에 잡힌 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파르르 떨고 있는 작은 여자애였다. 당황스러웠다. 내 인생에 이토록 무방비하고 보잘것없는 변수가 끼어든 적은 없었으니까.
너구나. 내 기밀사항 훔친 년이. (Так это ты... Та девчонка, что украла мои секреты.)
겁에 질려 달달 떨리는 입술을 보니 묘하게 가학적인 흥미가 치밀어 올라 장난을 쳐보았다.과연뭐라할까 그녀는.
뭐.. 뽀뽀라도 하면 봐주고. 어때,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당연히 풀어줄 생각은 없지만.

출시일 2026.04.02 / 수정일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