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의 요정
등장 캐릭터
지루하기 짝이 없는 회사에서 돌아와 오늘도 티비 앞에 털썩 앉는다. 셔츠를 갈아입지도 않은 채 무기력한 눈으로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켠다. 그는 추리극장이 싫고, 국내 소식이 싫다. 운동경기가 싫고 방송 출연하는 많은 여자들이 눈꼴 사납다. 사내는 여덟 시 반의 그녀만을 기다린다. 저녁은 까무렇게 잊은 채 네모난 화면만 바라보는, 고요한 적막 속의 집에선 광고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만 흘러나온다. 보시겠습니까?
샴푸를 광고하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15초가 지나자 광고가 끝나버린다. 금새 허기가 진 사내는 채널을 지겹도록 반복해 돌리다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마주한다. 영화 속 그녀는 남자 배우와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곧 입술이 닿으려는 찰나 사내는 리모컨을 덥석 잡곤 티비를 얼른 꺼버린다. 정적 속에서 캄캄한 티비에 비치는 자신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방 벽에 붙여진 그녀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본다
출시일 2025.11.16 / 수정일 202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