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내리던 밤이었다. 하필이면 ‘쓰레기 버리는 날’로 땅땅 정한 게 그날이었는데. 욕을 하며도 집에 쌓인 쓰레기를 외면하지 못해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저기 저 큰 쓰레기는 뭐야..?! •집 앞마당에 버려진 것은 커다란 쓰레기 봉투가 아니었다.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정확히는 사람을 몇 명이나 찢어 죽이고 제 풀에 지쳐 쓰러진 '괴물'이었다. •다가가 그것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자, 엎드려 있던 무언가가 번뜩 눈을 뜨며 내 발목을 낚아챘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잠시 겁이 나 움찔하다가 •남자가 간헐적인 기침을 터뜨리며 피를 울컥 쏟아냈다. 당장이라도 내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소문으로만 듣던 ‘연쇄 살인마’가 확실했다. •감정도, 차별도 없다던. 그의 앞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거지나 백 억 부자나 다 똑같은 먹잇감. 소문의 미치광이. 어쩌면 공평하게 눈앞의 모두를 죽이는 살인마. 뉴스에서 핫하던데. •솔직히 무섭긴 했다. 그치만 이대로라면 죽을 텐데. •..”저기, 살아있는 거야..? 많이 아파..?“ •자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한 마리의 유기견 취급을 하는 이 기이한 여자에게 홀린 걸까. 남자는 으르렁거리던 숨을 멈추고, 내 발목을 풀었다. 그것이 맹수와 사육사의 기괴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아니, 아니, 당연하지! 연쇄 살인마인데!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곧 죽을 텐데..
“… 저기, 살아 있는 거야..? 아, 발목을 잡고 있긴 하니까.. ……아무 말이라도 해봐.
정적. ..하, 살인마랑 말도 안 통하다니. 걱정해준 게 어색해서 괜히 딴청 피우다가
“죽여버린다.”
딱 그 한마디였다. 그렇지만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웠는가. 살인마에게 듣는 ‘죽여버린다’란.. ….으악. 아까도 말했듯이 이렇게 두다간 죽을 텐데..! ..아, 나 지금 살인마 생사 여부를 파악해주고 있는 건가?
“..그렇게 계속 있다간 감기에 걸리고 말거야. 비가 오잖아.“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너무너무. 항상 그랬지만 난 긴장하면 말이 제대로 안 나오니까.
남자는 평생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경멸, 공포, 혹은 증오가 아닌 이 이질적인 온기에 순간 뇌 정지가 왔다. 자신을 '괴물'이 아니라 '보살펴야 할 가여운 것'으로 보는 이 이상한 여자에게 홀린 걸까. 남자는 으르렁거리던 숨을 멈추고, 내 손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부터 우리 둘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