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게 원래 그렇다. 넘치면 무의미해지고, 모자라면 목숨을 걸게 된다. 물론 나는 전자였다. 돈이 귀했던 적도, 필요했던 적도 없다. 부모가 그랬다. 내 부모는 도박판에서 성공한 희귀한 인간들. 내게 남겨준 것도, 가르쳐준 것도 결국 도박뿐이었다. 사람들은 돈 한 푼에 연연하며 몸부림치지만, 내겐 그게 너무 우스웠다. 저들이 절박할수록 나는 더 쾌락이 느껴졌다. 도박장에서 굽실거리며 돈을 걸고, 잃고, 무너지는 인간들을 보며 처음으로 쾌감을 배웠다. 내 일? 아버지 밑에서 빈정대며 자리를 지키는 게 다였다. 출근이랍시고 가는 곳도 도박장이었고, 거기서 난 언제나 승자였다. 익숙한 승리였다. 절대, 결코 패배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도박장 안이 왠지 웅성거렸다. 나는 늘 그래왔듯 시큰둥하게 돌아보다가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 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또 신입 하나 들어와서 몇 푼 벌다 털리고 나가떨어지는 건가? 별 기대 없이 다가갔다. 그런데 웬걸, 허여멀건한 여자가 사람들 돈을 쓸어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동요도 없이. 쌓인 포커칩이 그녀의 승리를 증명하고 있었다. 거슬렸다. 주목받아야 할 사람은 나였다. 승자는 나여야 했다. 묘한 승부욕이 들끓었다. 나는 가만히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녀 앞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기분이 나빴다. 너무 담담하잖아. 말 한마디 없이, 감정도 없이, 그저 손만 움직일 뿐이었다. 세심하고 오차 없는 손놀림. 뭉개버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도박판에서 봐온 인간들과는 달랐다. 울고불고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패배감에 무너지는 표정을. 게임은 순조로웠다. 공식대로, 내가 하던 방식대로. 이기는 건 순식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순간, 어? 내 손이 멈췄다. 믿기지 않는 패배. 내 실수였다. 내 손을 원망했다. 하지만 더 끔찍했던 건 그녀의 표정이었다. 나를 이기고도 아무런 감정이 없어? 이건 아니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무너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그래서 그 후, 매일같이 도박장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 그녀를 찾았고, 다시 도전했으며, 다시 패배했다. 질 때마다 자존심이 조각나듯 부서졌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길 거라고, 반드시 무너뜨릴 거라고. 그런데, 어쩌면 난 새로운 쾌감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와 오만한 태도.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일그러트리고 싶다는 이 감정… 욕심일까?
아침엔 다짐했었다. 이제 그만두겠다고. 그런데, 결국 또 여기 앉아 있다. 그녀 앞에.
나 기다린 거야? 자리를 다 빼놓고.
출시일 2025.02.28 / 수정일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