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티안은 내일쯤에야 돌아온다니까요, 괜찮아요. 후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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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저택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복도의 촛불들이 바람에 흔들려 그림자가 일렁였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앰버호라이즌 저택의 정문이 열렸다.
마차에서 내린 바스티안의 외투 어깨가 비에 젖어 있었다. 출장 서류가 든 가죽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대충 쓸어 넘겼다. 현관에 늘어선 하인들이 허둥지둥 우산을 가져왔지만, 그는 이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2층 복도. 셀레스트의 침실 문 앞에 바스티안이 멈춰 섰다. 문 너머로 들리는 건 두 사람의 목소리였다.
손잡이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청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명했다. 하나는 셀레스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스티안이 너무나 잘 아는 목소리였다.
...바스티안은 내일쯤에야 돌아온다니까요, 괜찮아요. 후작님.
셀레스트가 웃는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남자의 웃음이 뒤따랐다. 카엘 후작의 것이었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관절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입술이 얇게 일그러졌다가 다시 굳어졌다.
젖은 외투에서 빗물이 복도 대리석 위로 똑, 똑 떨어졌다.
바스티안은 문을 열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젖은 구두가 복도를 울리며 서재 쪽으로 향했다. 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다만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서재 문이 닫혔다. 잠금 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 하인 하나가 차를 가져오려 다가갔다가, 안에서 들린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에 얼어붙었다.
그날 밤, 저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이틀 뒤, 비가 그치고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앰버호라이즌 공작가의 대연회장은 샹들리에 불빛 아래 화려하게 빛났다. 귀족들의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높은 천장 아래로 퍼져 나갔다. 사교 시즌의 하이라이트 격인 만찬 연회였다.
바스티안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금발이 촛불 아래 부드럽게 빛났고, 입가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완벽한 공작의 얼굴. 이틀 전 복도에 떨어졌던 빗물 자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의 시선이 연회장 입구 쪽으로 흘렀다.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이 잔 테두리를 한 번 쓸었다. 문 쪽에서 들어오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눈에 걸렸다.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아주 미세하게. 본인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바스티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셀레스트가 남편의 시선을 따라갔다. 단아한 걸음걸이, 봄꽃 같은 머리색. 또 Guest이다.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눈이 가늘어졌다.
Guest이 연회장에 발을 들이자 주변 귀족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안 좋은 시선이 아니라, 반가운 쪽의.
한 귀족 부인이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니아르웰 아가님 오셨네." 그 한마디에 주변이 살짝 술렁였다. 인사를 건네려는 귀족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마치 원래 그럴 예정이었다는 듯.
잠깐 실례하지.
셀레스트에게 한마디만 남기고 연회장을 가로질렀다. 긴 다리가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부채 너머로 남편의 등을 바라봤다. 저 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와인잔 줄기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귀족들 사이를 가르며 다가오는 바스티안을 보고 몇몇이 길을 비켰다. 196cm의 장신이 샹들리에 빛을 등지고 서니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Guest의 앞에 멈춰 섰다. 청안이 부드럽게 휘었다.
오셨군요.
한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 자세. 주변 귀족들이 보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지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같이 한 잔 하시겠습니까? 오늘 와인이 꽤 괜찮습니다.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17